1997년식 현대자동차 ‘아반떼’를 12년째 타고 다니는 친한 후배 기자가 있는데 좀처럼 자동차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아 주변에서는 알뜰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연봉 8000만 원에 은행 대출 없이 30평형대 아파트와 수억 원에 이르는 펀드까지 보유하고 있고, 부양가족도 없는 노총각이 중고시세 200만 원짜리 차를 끌고 다니니 이만저만 알뜰한 게 아니죠. 그래서 본인의 근검절약 정신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과연 알뜰한 것일까요. 전통적인 절약의 개념에서 보면 그의 행동은 ‘선(善)’일 수도 있지만 자원 절약과 효율을 중시하는 최근의 개념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1997년식 배기량 1.5L 아반떼 자동변속기 모델의 연료소비효율(연비)은 L당 15km 정도에 최고출력은 102마력입니다. 당시 연비 측정 방식이 느슨해서 2002년부터 바뀐 새로운 연비 기준으로는 L당 12km 정도로 추산됩니다. 반면 현재 판매되는 아반떼는 배기량이 1.6L로 올라갔지만 연비는 L당 15.2km로 후배의 아반떼보다 20% 이상 높아졌습니다.
연비가 떨어지는 자동차를 타면, 한정된 자원이면서 재생도 불가능한 석유의 사용량이 많아지고,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늘어납니다. 새로운 자동차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원을 감안하더라도 총체적인 효율을 생각한다면 지금 타는 구형차를 신형차로 바꾸는 것이 ‘착한 소비’인 셈이지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도 “연료 절약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고용 창출과 소비 진작 효과까지 생각한다면 오래된 헌 차를 새 차로 바꾸는 것은 애국적인 소비”라고 말하더군요.
이는 자동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냉장고나 에어컨,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서부터 공장 설비 등 생산시설까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시스템은 가능하면 빨리 신형으로 교체해야 좋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지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백열등이나 형광등을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바꾸는 것은 당장은 비용이 들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큰 이득을 가져옵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사용되고 있는 일반 조명의 30%만 LED 조명으로 대체해도 연간 1조6000억 원 상당의 에너지가 절감돼 원전 2기의 건설과 800만 t의 이산화탄소 저감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에 정부가 앞장서 2012년까지 공공기관 전체 조명의 30%를 LED로 바꾸는 것을 의무화할 계획입니다. ‘무조건 오래 쓰는 것이 좋다’는 전통적인 절약의 개념에 큰 변화가 온 것이지요. 유가(油價)가 급등하고 환경 재앙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바꿔야 할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하는 수고까지 얻게 됐으니 효율의 시대에 산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후차 교체 시 세금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이번 기회에 신형차로 바꾸도록 고집불통 후배를 한 번 더 설득해 봐야겠습니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