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중소기업인들이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기중앙회관에서 허용석 관세청장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각종 ‘관세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제공 중소기업중앙회
수입산 가구에 0% 관세 원자재 수입땐 8% 물려
국내 가구제조업체들 불리
세관에 미리 양해 구해도 통관 늦어져 생산 차질
한일 합작영화를 제작한 ‘크라제픽쳐스’는 일본에서 촬영한 필름을 국내에 들여오면서 국내 영화사보다 관세를 3배나 많이 냈다. 똑같이 해외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 필름이더라도 국내 영화사는 1m당 26원을, 합작 영화사는 1m당 78원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이는 국내 영화사를 키우자는 관세 당국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크라제픽쳐스 관계자는 “일본 대만처럼 수입 영화 필름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게 국제적 추세”라며 “한국도 영화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작영화와 국산영화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관세 규제’로 신음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관세 행정도 친(親)기업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매출 20억 원 규모의 제조업체인 A사는 은행으로부터 수출 실적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가입비 35만 원, 연회비 15만 원을 내고 한국무역협회 회원사로 가입했다. 그렇지 않으면 협회를 직접 방문해 수출 실적 증명서를 떼어야 하기 때문. 이 회사 사장은 “우리 회사가 수출한 실적을 확인받는 데 왜 무역협회 등 외부기관에 추가로 비용을 들여가며 증명서를 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중소기업인들은 관세청 홈페이지 등에서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수출 실적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산 가구업계는 가구 원자재인 파티클보드(PB)나 중밀도 섬유판(MDF)을 수입할 때의 관세율인 8%를 낮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수입 완제품 가구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관세를 물지 않고 수입되고 있어서 국내 가구업계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이유다. 가구연합회 관계자는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가구 제조 단가는 높아진 반면, 수입 완제품 가구는 관세가 없어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달 중순 홍콩에서 열리는 국제귀금속전시회에 귀금속을 출품하려는 귀금속업체 B사는 공항 세관이 벌써부터 신경 쓰인다. 전시 물품 반출에 대한 확인서를 세관에 제출하고 양해를 구해도 귀국할 때 인천공항 세관에서 귀금속 제품이 길게는 일주일 동안 예치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김성진 귀금속연합회장은 “통관이 오래 걸려 전시회에서 현장 주문 받은 귀금속 제품은 빨리 생산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원재료를 수입, 가공해 수출할 때 수입 시 납부한 관세를 환급받는 간이정액환급 대상 기업을 확대해 달라는 요청도 나온다. 현재 대상 기업은 직전 2년간 매년 총 환급 실적이 4억 원 이하인 중소기업이지만, 중소기업 수출 규모가 커진 것에 맞춰 간이정액환급 한도액을 대폭 확대해달라는 설명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허용석 관세청장은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적극 수렴해 친기업적 관세행정을 펴겠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중소기업들이 호소하는 대표적인 관세 규제▼
― 국제귀금속전시회에 출품한 귀금속 제품을 들여올 때 공항 세관에서 시간이 길게는 일주일 걸려 주문받은 제품을 수출할 때 시간이 걸리는 등 불편.
― 국내 가구업체가 가구 원자재를 수입할 때 관세가 8%인 반면 외국 가구업체가 완제품을 들여올 때는 관세가 0%로 국내 업체가 외국 업체에 역차별.
― 수출실적증명서를 온라인으로 떼려면 한국무역협회에 가입해야. 관세청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자료: 중소기업중앙회, 각 업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