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와인은 분위기를 내는 데는 그만이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알코올이 금방 올라 얼굴을 붉게 만들고, 몸을 더욱 덥게 해 불쾌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와인에 얼음을 넣어 마셔보자.
‘어떻게 와인에 얼음을 넣어 마실 수 있냐’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이나 호주 등에서는 여름이면 저가의 캐주얼한 와인에 얼음을 넣어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얼음을 넣은 와인은 시원한 맛으로 상쾌한 기분을 선사해 더운 날씨에는 ‘딱’이다. 그렇다면 어떤 와인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게 좋을까.
우선 로제 와인이 있다.
로제 와인의 생명은 신선함과 상쾌함이다. 미지근한 로제 와인을 아이스 버킷에 놓고 차가워질 때까지 기다려 마시는 방법도 있지만 잔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느낌도 꽤 근사하다.
신성호 나라식품 마케팅 본부장은 “‘베린저 화이트 진판델’에 얼음을 넣으면 달콤한 맛을 상쾌하게 만들어주고, 시간이 지나도 신선한 맛을 유지해준다”고 말한다. ‘블루넌 핑크 아이스’ 또한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마실 때 농익은 포도의 아로마와 달콤함을 만끽할 수 있는 와인이다.
포트와인도 제격이다. 일반적인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12~14도인데 반해 포트와인은 17~19도로 강하다.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높은 당과 알코올의 캐릭터를 가진 포트와인은 얼음을 넣어 마시면 맛을 희석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다우 토니 포트’의 경우 그냥 마시면 술이 확 올라오지만 얼음과 함께 마시면 지친 몸에 활력을 심어준다.
얼음이 살짝 녹기 시작할 때 마시는 게 최적의 맛을 느끼는 방법이다.
와인 증류주 ‘그라파’도 있다. 포도를 압착해 와인을 만든 뒤 남은 포도껍질, 씨, 잔가지 등 찌꺼기를 ‘비나키아’라 부른다. 비나키아를 발효해 구리 용기에 넣고 증기나 중탕 방식으로 가열해 증류하면 무색 증류액이 나온다. 이를 술통에 넣고 장기간 숙성해 만들어지는 게 바로 그라파다.
향은 달콤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35도 이상, 때로는 60도를 넘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소화를 돕고, 혈액 순환에 좋다는 이유로 식사 후 즐겨 마시지만 소비문화가 다른 국내에서는 식사 때마다 마시는 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더운 날, 얼음을 넣어 마시면 근사한 풍미를 선사한다.
최근에는 아예 얼음을 넣어 마시도록 만든 와인까지 등장했다.
호주 로즈마운트 사에서 생산한 ‘O(오)’가 그 것이다. 이 와인은 생산 단계부터 얼음을 넣어 마시는 콘셉트로 기획, 얼음으로 와인이 희석되는 것을 감안해 만들어졌다. 이준혁 신동와인 소믈리에는 “약간의 스파클링을 함유하고 있는 ‘O’는 얼음으로 차가워졌을 때 더욱 달콤한 맛을 내고, 보통 와인에 얼음을 넣었을 때 산도가 금세 사라지는 것과 달리 지속적으로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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