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는 누구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 3항)가 있다. 수사 진행은 물론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도 될수록 신속하게 결정해 피의자를 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오래 두어서는 안 된다. 영장이 청구되면 법원 판사는 ‘지체 없이’ 피의자를 심문하고 구속 여부를 ‘신속히’ 결정하게 돼 있다. 전국의 지방법원 및 지원에 주말과 야간에도 영장담당 판사를 배치하는 이유다. 범죄는 오히려 평일과 낮보다 주말과 야간에 많이 발생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재작년부터 경력이 많은 부장판사에게 주말 영장을 맡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이 영장 문제로 검찰과 갈등을 겪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명한 지원장은 “주말에 판사들을 서울 집에 못 가게 하는 영장청구는 100% 기각하라”고 판사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는 4월 영동지청 검사들과 이 지역 변호사들과의 오찬 때도 “판사들이 마음이 약해서 영장을 발부해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한 변호사는 “주말 영장이 100% 기각되면 주말 사건을 열심히 맡아야겠다”는 농담도 했다고 한다. 작년에는 당시 영동지청장에게도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니, 사실이라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영동지원의 해명은 다르다. 이 법원엔 지원장 외에 단독판사가 2명 있고, 이들이 영장을 맡고 있다. 판사들의 상경이 격주로만 가능해 주말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게 가능한지를 업무협조 차원에서 물어본 것일 뿐이라며 검찰을 원망한다. 딱하긴 하지만 판사들이 공적(公的) 직분보다 개인 사정을 우선시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긴급체포의 경우 구속 여부를 48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 판사들이 주말에 모두 쉬면 이것이 불가능해 인권 침해를 낳는다.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사퇴 요구에서 상당수 판사들은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의혹은 사법행정권과의 경계선상에서 벌어진 논란이었다. 하지만 영동지원의 경우는 사법행정권의 범위를 일탈했음은 물론 재판 내용에까지 개입한 심각한 사안이다. 판사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재판의 독립, 사법부 독립, 그리고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른 재판’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