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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 간도협약 前부터 치밀한 준비…1908년 백두산 일대 대대적 조사”

입력 | 2009-06-09 02:54:00


서길수 교수 20년 연구 집약

‘백두산 국경 연구’ 출간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1909년 9월 4일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고 간도지역을 청나라에 넘겼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지만 간도협약에 대해선 ‘일제가 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 광물 채굴권 같은 이권을 얻기 위해 간도를 넘겼다’는 식의 단편적인 해석이 대부분이다. 청나라가 간도협약 체결 전부터 간도를 손에 넣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던 사실은 부각되지 않았다. 연구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사진)는 최근 낸 연구서 ‘백두산 국경 연구’(여유당)에서 백두산 일대와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간도협약 이전에 역사적 사실을 날조한 중국의 공작을 살폈다. 20년 동안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일대를 답사하며 직접 살핀 내용 및 고지도와 사료를 분석한 연구를 집약한 책이다.

서 교수는 청나라의 지방관리로 1908년 백두산 일대를 조사한 유건봉(劉建封)의 활동을 상세히 소개했다. 유건봉은 조사원과 군인들을 데리고 3개월에 걸쳐 백두산 일대를 조사했다. 그는 조사 결과를 자료로 내면서 1712년 청나라가 세운 국경 표시인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를 원래보다 아래쪽인 소백산 쪽으로 옮겼다.

또 소백산보다 더 아래인 포태산을 중심으로 ‘압록강∼포태산∼두만강’으로 이어지는 국경을 주장함으로써 백두산과 간도 지역을 한국 땅에서 제외시켰다.

서 교수는 “유건봉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단 한 가지도 대지 못했다”면서 “그런데도 최근 중국은 유건봉의 주장을 한중 국경 문제 해결의 교과서로 사용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1987년 유건봉의 자료집을 토대로 한 장백총서(長白叢書)가 나온 뒤 관련 연구와 논문이 잇따르고 있고, 작년에는 유건봉의 백두산 답사 100주년 기념사업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우리 학계는 이제부터라도 역사적 사례 연구를 깊이 해서 중국의 의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구려연구회장을 지낸 서 교수는 1991년 고구려 유적 답사차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도중 북한과 중국의 합의로 설치된 국경 푯말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서 교수는 한중 국경 문제, 백두산정계비 문제, 간도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50차례 이상 백두산 일대를 답사했다.

서 교수는 책에서 1962년 북한과 중국 사이에 체결된 조중 국경조약도 상세히 분석했다. 그는 이 조약에 따라 설치된 푯말 28개의 좌표를 추정 제시했고,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섬 451개 가운데 187개는 중국, 264개는 북한에 속한다는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