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현직 행정인턴 10명, 6개월 해보니…
“취업교육 상당수 못받아
정부 개선책 준비한다지만
시간도 별로 없는데…”
“커피 심부름만 안시킬뿐
문서정리 등 단순업무 반복
이럴거면 왜 뽑았는지…”
“일도 배우고 경력도 쌓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당분간이긴 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점 때문에 안심도 됐고요.” 1월 초 행정인턴으로 선발돼 정부청사로 첫 출근을 한 날, 신모 씨(25·여)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200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1년간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외국계 기업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입사가 취소돼 한참을 ‘백수’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며칠 만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영문서적을 번역하는 일을 맡았지만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일하다 보니 ‘방치’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칭찬을 기대하며 번역 원고를 제출할 때마다 돌아오는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담당 과장은 1주일에 한 번씩 “잘돼 가느냐”고 물을 뿐 언제 끝내라는 지시도, 독촉도 없었다. ‘이럴 거면 뭣 하러 인턴을 뽑았지’ 하는 생각에 같은 부서 공무원들이 야속해지기까지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인턴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 덕에 몸은 편했다. 다만 서무담당 여직원이 “인턴이 아니라 상전을 모시는 것 같다”며 눈치를 줘 마음고생이 적잖았다. 결국 신 씨는 업무량을 줄이면서 몰래 취업준비를 해 3월 초 한 연구기관에 취직했다. 하지만 같은 사무실의 공무원이 “오래 봐야 서로 좋을 것 없으니 얼른 취직해서 나가라”고 했던 말은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정부가 경제위기 속에서 실업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일거리를 주려고 시작한 행정인턴제가 이달로 시행 6개월을 맞았다. 5월 말 현재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일하는 행정인턴은 2만6851명으로 정부가 목표로 했던 2만3000명보다 17%가량 많다.
동아일보는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되는 이 제도의 중간평가를 위해 전현직 행정인턴 10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대부분 신 씨처럼 공무원들의 무관심으로 소외감을 느꼈고,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단순 반복 업무에 투입됐거나 지금도 맡고 있다고 털어놨다. ‘임시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는 시행초기의 지적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은 행정인턴을 ‘(잡일만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의 행인(行人)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취재팀이 만난 10명 중 7명은 정부기관들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1∼3월 중앙부처에서 행정인턴으로 일하다 최근 민간기업에 취업한 박모 씨(29)는 “첫 출근 때 담당 공무원조차 내게 무슨 일을 맡겨야 할지 몰라 무척 곤혹스러워하더라”고 회상했다. 부서에 배치된 뒤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해당 부서 직원들은 박 씨에게 중요정보 접근 권한을 줘야 할지를 놓고 한참을 얘기하더니 결국 주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박 씨는 “그래서 맡은 일이 문서철을 하는 것이었는데 3개월 동안 서고(書庫) 한 면을 채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10명 중 4명은 정부의 약속과 달리 취업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정부는 ‘일하면서 취업준비’라는 말을 행정인턴의 슬로건처럼 내세우며 취업교육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앙부처의 지방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한 김모 씨(31·여)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의 사이버수업을 제외하곤 별다른 취업 관련 교육을 받지 못했다. 취업 교육이 중앙부처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외곽에서 일하는 인턴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김 씨는 혼자서 취업 준비를 해 최근 국책 연구기관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업무 강도는 같은 부처 안에서도 들쭉날쭉했다. 한 경제부처에서 행정인턴으로 일한 2명 중 1명은 “인턴에게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는 분위기여서 놀다시피 했다”고 답한 반면 다른 한 명은 “매일 야근에다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행정인턴제가 이처럼 본래의 취지와 달리 운영상 적지 않은 허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도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행정인턴이 공무원이 되면 인턴기간의 절반을 호봉에 가산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각 부처는 영어마을 체험, 모의면접, 컴퓨터 교육 등 취업 관련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도 일부 중앙부처에 국한된 경우가 많아 전체 행정인턴의 81.6%가 일하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으로 확산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행정인턴제::
경제위기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에게 공공부문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며 취업에 대비할 기회를 주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제도. 1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으며 10, 11개월간 근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