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름 어렵고 ‘한국맛’도 잘 모르지만 “가족 위해 배추김치 담그고 싶어요”
“긴 김밥을 도마에 놓고 칼로 썩 썰었어요. 낮에 선생님이 썬 김밥과 너무 차이가 나더라고요. 옆구리가 터지고 모양은 흐트러졌어요. 얼른 전화를 걸어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칼이 잘 들어야 모양도 예쁘게 나온다고 하더군요. 칼을 잘 갈아서 김밥을 아주 정성스레 먹기 좋게 잘 썰어서 밥상에 올려놓았더니 아이 아빠와 아들 표정이 환해졌어요.”
중국 출신 최봉련 씨(30·전북 군산시)는 소풍 가는 아들의 도시락에 매번 가게에서 사온 김밥을 채워 넣는 것이 미안했는데, 최근 익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김밥 싸는 법을 배웠다며 싱글거렸다.
“이젠 분식표가 아닌 아내표, 엄마표로 아이 아빠와 아들한테 김밥을 잘 싸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거려요.”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여성들을 난처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낯선 음식문화다. 특히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음식과 관련된 용어. ‘쓰다’ ‘달콤하다’ ‘떫다’ 등 맛을 표현하는 어휘에 익숙하지도 않은데 심지어 뜨거운 국을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시어머니나 가족들이 쓰는 요리 용어도 낯설다.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등 기본 양념 배합도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갖은 양념’, ‘적당히’ 등 손맛을 강조하는 애매모호한 용어로는 제맛을 낸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한소끔 끓이다’, ‘부치다’, ‘무치다’ 등의 조리용어도 낯설긴 마찬가지. 젓갈이나 절임, 장아찌 등 발효 음식의 냄새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요리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국제결혼이민자를 위해 여러 나라 언어로 조리법을 소개하는 ‘홈사랑 엠쿠킹(www.mcooking.co.kr/jn)’이 전남 지역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여성 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고 싶은 요리, 가족이 원하는 요리’ 1위로 배추김치가 꼽혔다. 이어 미역국, 불고기, 고등어조림, 갈치조림, 칼국수 등을 배워 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
조항수 엠쿠킹 대표는 “자주 해먹는 음식을 정리하다 보면 배워야 할 한국 음식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며 “새로운 요리나 요리책 요리에 도전하기보다는 가족의 입맛에 맞는 요리로 시작하면 큰 어려움 없이 한국 요리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