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블랙홀’이었던 강남 지역에서 순항 중인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아래)와 ‘라이어’. 사진 제공 연극열전, 파파프로덕션
‘늘근도둑이야기’ 공연 객석점유율 94% ‘대박’
새 연극 시리즈 곧 시작 “불모지서 신시장으로” 주목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는 강북의 대학로보다 좌석 점유율이 더 높은 ‘이변’을 낳고 있다. 5월 1일 시작한 공연의 관람객은 지금까지 9000여 명. 연극 흥행의 블랙홀로 불리는 강남에 반신반의하며 진출했던 작품이 평균 객석점유율 94%를 기록하는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제작사는 연말까지 하기로 했던 공연을 내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여러 편의 연극을 장기간 무대에 올렸던 기획사 ‘연극열전’ 최여정 팀장은 “박철민이라는 대중적 지명도가 있는 배우와 사회 풍자를 가미한 코미디, 직장인 할인(40%) 등 세 가지 요소가 코엑스 부근 30, 40대 직장인들에게 다가섰다”고 분석했다. 강남에서 연극이 흥행한 것은 2001년부터 5년간 강남구 청담동 유시어터 무대에 올랐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이후 처음이다. ‘백설공주…’는 모두 20만 명을 기록했다.
‘늘근도둑이야기’처럼 강남 지역이 연극의 신(新)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남판 연극열전’도 곧 시작한다. 뮤지컬 ‘삼총사’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을 제작한 엠뮤지컬컴퍼니는 11월 14일부터 내년 8월까지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연극열전에 비견되는 연극 시리즈를 무대에 올린다. 연극열전이 황정민 나문희 씨 등 스타 배우들을 무대에 세운 데 비해 이번 시리즈는 영화감독 네 명이 각각 한 편의 연극을 연출한다는 콘셉트다.
이제까지 강남은 연극의 불모지로 통했다. 지난해 4월 10일부터 강남구 논현동 동양아트홀 라이어 전용관에서 공연 중인 ‘라이어’도 안착하기 쉽지 않았을 정도. ‘라이어’는 대학로의 대표 흥행 연극이지만 강남에서는 점유율이 40%대까지 떨어진 적도 많았다. 제작사인 파파프로덕션의 이현정 팀장은 ‘라이어=연극=대학로’라는 인식을 깨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연극의 흥행을 좌우하는 입소문이 대학로에 비해 느린 것도 강남 지역 연극 흥행의 장애물이다. 청담동에 있는 극단 유의 김명규 대표는 “2001년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괜찮다는 소문이 퍼진 게 공연 시작 후 서너 달이 지난 때부터였다. 대학로라면 한 달이면 충분했을 것”이라며 “한두 달이면 막을 내리는 연극공연을 입소문이 퍼질 때까지 지속시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대학로 관객이 대학로에 들렀다가 연극 한 편 보고 가자는 가벼운 마음이라면 강남 지역은 연극을 선택하고 공연장을 찾아오는 적극적인 손님”이라며 “그런 관객들이 불편한 교통을 감수하고 공연장을 끌어들이기까지 강한 동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으로 수익을 내기에 강남 공연장의 높은 임차료와 비좁은 주차공간도 넘어야 할 벽이다.
하지만 강남 연극에 ‘봄’을 알리는 신호가 잦아지며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공연 제작자들은 연극 불모지였던 강남을 새로운 기회의 공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백암아트홀 조설화 과장은 “강남권에 직장과 주거지를 두고 있는 사람 중 대학로로 가긴 부담스럽지만 다양한 장르의 공연에 갈증을 느끼는 관객층이 뚜렷이 존재한다”며 “이들을 잡기 위한 기획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2005년 우림청담시어터에서 여배우 열전을 기획했던 PMC 마케팅팀 이동운 과장은 “대학로가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내놓는다면 강남은 다른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대학로에서 검증받은 작품이나 스타마케팅을 활용한 작품들로 관객층에게 연극이라는 장르를 익숙하게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