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예산 확보해 설비완공땐 가슴 뿌듯”
‘태어날 때부터 내 피부는 검은 색/자라서도 검은색/태양아래 있어도 검은색/무서울 때도 검은색/아플 때도 검은색/죽을 때도 여전히 나는 한 가지 검은색이랍니다/그런데 백인들은요/태어날 때는 핑크색이잖아요/자라서는 흰색/태양아래 있으면 빨간색/추우면 파란색/무서울 때는 노란색/아플 때는 녹색이 되었다가/죽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면서 이래도 너는 나를 유색인종이라고 하는지?’ (아프리카 어린이의 시)
‘자동차 유리창에 도배하듯 붙여놓은 아파트 주차위반 딱지, 속상하시죠? 물을 뿌려도 칼로 긁어도 잘 지워지지 않고…이럴 때는 스프레이 모기약을 뿌려주면….’
매일 e메일로 날아드는 이런 글들을 읽으며 한국기계연구원 조상배 홍보실장은 바쁜 업무에서 한숨을 돌린다. e메일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끼게도 한다. 생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엔 무릎을 치기도 한다. 이런 고마운 e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2005년 연구원을 정년퇴직한 윤박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위원(64) 이다.
8일 오후 대전 서구 만년동 대전YMCA 5층 강당에서 윤 위원을 만났다. 50, 60대가 주축인 대전YMCA합창단이 연말 정기공연을 위해 연습에 한창이다. “연습을 해야 하니 거기서 만나자”던 윤 위원은 맨 뒷줄에서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정년퇴직 때 애창곡을 CD에 담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는 그는 “대학(부산대 경영학과) 시절 중창부 활동을 하며 지역방송에도 출연했을 만큼 음악을 즐겼다”고 말했다.
윤 위원은 197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입사해 1981년부터 기계연구원에서 일했다. 행정직 최고 보직인 기획부장과 행정부장, 감사실장을 역임한 그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소 행정직 정년퇴직 1호로 연구단지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퇴임 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3년 동안 감사로 재직한 뒤 현재 KISTI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매일 e메일을 통해 후배들과 지인들을 찾아간다. 블로그(blog.daum.net/yoon3838)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발견했거나 지인에게서 받은 글과 사진 등을 편집해 e메일로 보낸다. 매일 그의 e메일을 받는 사람은 500명이 넘는다.
그는 자신이 전할 정보를 꼼꼼히 체크한다. 한번은 건강상식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조그만 책자로 펴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추진하다가 의사들이 공식 검증을 해주지 않아 중도에 포기했다.
“연구소는 연구원들이 주축이에요. 하지만 행정직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죠. 인체로 보면 혈액 순환의 촉매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그는 “행정직으로 근무하면서 연구소 예산을 기획하고 실제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예산을 확보했다”며 “기획했던 연구시설이 완성되고 설비가 가동되면 가슴이 뿌듯했다”고 회고했다. 정부 예산 확보는 설득력 있는 기안이 첫 번째. 하지만 인간적인 이해도 필요해 가끔은 관계 공무원들과 술도 마셔야 했다. 그럴 땐 폭탄주를 20여 잔씩 마시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물론 그런 관행이 있었던 먼 과거의 일이다.
윤 위원은 “대덕연구단지가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조선, 자동차, 항공 등 많은 분야에서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퇴직했지만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애쓰는 연구단지 종사자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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