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블랙야크와 함께 하는 에코 트레킹]장성 축령산

입력 | 2009-06-12 03:03:00


편백나무-삼나무 세상
인간은 지나가는 손님

숲은 나무들 세상이다. 새들의 세상이고 벌레들 세상이다. 사람은 손님이다. 손님은 손님답게 굴어야 제 대접을 받는다. 객이 주인 될 수는 없는 일. 그러니 숲에서는 자세를 낮추자. 목소리는 작게, 발걸음은 살살. 주는 대로 받고 받은 만큼 감사하자.

산에 올라 고함치는 이들. 당장 그만둘 일이다. 왜. 당신이 숲의 주인이 아니니까. 정상에서 소리친다고 그 산이 제 것 되는지. 똑똑히 아로새기자.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더불어 보듬고 살아갈 친구다.

숲은 조용하다. 그래서 행동보다는 사념이 앞선다. 그 깊은 침잠과 고요 덕분이다. 그래서 숲은 걷기에 좋다. 그 걸음마다 생각이 실린다. 숲 걸음의 그 생각이 비뚤어질 일 없다. 청징한 숲 기운과 정직한 자연에 둘러싸여서. 그러니 숲을 사랑하는 이, 나무처럼 듬직하다.

이 글을 나는 전남 장성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에서 썼다. 아니 정확히는 숲이 쓰고 내가 받아 적었다. 그 숲은 경이로웠다. 진초록의 침엽으로 온 산을 뒤덮은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장대한 숲 풍광이 그랬다. 그리고 숲 속을 지배하는 알싸한 피톤치드의 숲 향 역시 그랬다. 하지만 나를 더 감동으로 몰아넣은 것은 따로 있었다. 임종국이라는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 그루 나무다. 아니 그 나무로 뒤덮인 축령산 숲이다. 나는 그를 그의 생전에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는 내게 친근하다. 이 숲이 그토록 살갑게 다가와서다. 가뭄 들어 뿌리가 마르자 피멍 든 어깨로 물지게 지고 올라 살려낸 나무다. 끝도 없는 나무 심기에 가산은 탕진되고 병석에 누워 거동조차 못할 때도 원망 한 번 한 적 없는 나무들이다.

축령산 임도
숲길 걷기

6월 한낮의 축령산 숲길. 그늘진 숲 속은 땡볕에 달궈진 숲 밖 세상과 딴판이다. 어둡다고 느낄 만큼 숲 그늘은 짙고 춥다고 느낄 만큼 숲 기운은 차다. 그 초록의 세상. 나는 그 녹음에 물들어 피부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 것 같았다. 아니 겉옷을 벗어 짜면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이 청초한 초록의 세상. 거기서 사람은 유일한 객이다. 하지만 숲은 사람을 거부하지 않는다. 새들도 곤충도 아니 바람까지도 숲에서는 사람을 개의치 않는다. 특별히 이 숲에서는. 이유는 하나, 춘원 임종국 선생(1915∼1987)이다. 바로 이 숲을 만든 이다.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7년 병석 끝에 운명하는 순간에도 선생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고 말했던 조림왕이다.

그는 ‘나무를 심는 사람들’(장 지오노가 쓴 소설)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의 현신이다. 황무지에 도토리 알을 심고 그 열매를 들짐승이 죄다 먹어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도토리 알을 심어 커다란 숲을 일군 엘제아르. 그처럼 임 선생도 1956년부터 21년 동안 이 축령산에 나무를 심었다. 89세까지 나무를 심다 죽은 엘제아르 보다는 일찍 하직(72세)했지만 황무지를 낙원으로 변화시킨 그 의지만큼은 절대로 그에 못지않다.

이 숲을 거닐다 한 안내판을 보게 됐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춘원은 극심한 가난과 궁핍을 무릅쓰고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헐벗은 이 산야를 푸르게 가꾸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이 일대 596ha(약 180만 평)의 임야에 253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어 이토록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어 낸 주인공이다. 춘원이 나무를 심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에 인촌 김성수 선생이 조성해 놓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보고 감명과 영향을 받아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

그 숲길의 정상에서 나는 임 선생을 만났다. 수목장으로 다시 모신 그가 영면하고 있는 어린 느티나무 아래서다. 그 자리에서는 진초록의 축령산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모두 그의 손으로 심고 가꾼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다. 그는 얼마나 흐뭇할까. 내가 그런 느낌일진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나무 심는 게 나라 사랑하는 길이야.’

장성=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조림왕 임종국, 평생 가꾸고 묻힌 ‘명품 숲’

임종국 선생이 조림한 축령산 삼나무 편백나무 숲은 현재 산림청이 관리 육성 중이다. 이 숲은 2000년 실시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1등에 올라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자랑스러운 숲. 이어 임 선생의 이름도 이듬해 새 천 년의 첫 식목일(2001년 4월 5일)에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됐다. 숲의 명예전당은 경기 포천시 광릉의 국립수목원에 있다.

숲에는 곳곳에 지도와 안내판이 있어 숲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래서 따로 숲 해설가가 없어도 궁금증이 해소된다. 이 숲의 특징이라면 쭉쭉 뻗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도처 산을 뒤덮어 숲의 풍치가 잡목과 소나무 참나무로 이뤄진 여타 숲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삼림욕의 핵심인 피톤치드.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 곰팡이 해충에 저항하기 위해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이다.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한다. 그런데 이 피톤치드는 편백나무에서 특히 많이 배출된다. 하나 더 알아 둘 것은 피톤치드 방출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가장 왕성하다는 사실이다.

이 숲에는 길이 많다. 임도가 8개나 된다. 트레킹은 임도를 따라 진행된다. 물론 숲 속에는 작은 길도 있다. 임도를 많이 낸 것은 간벌 등을 통해 경제성 있는 숲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 가끔 개방된 임도로 외부 차량이 숲에 들어온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관계차량 외에 통행을 금하고 차단기가 설치돼 있기는 해도.

이 숲은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찬사를 받는 명품 숲이다. 입목 축적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독일인도 이 숲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을 정도다. 그러니 올여름에는 아이들 손잡고 이 숲을 걸어보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임종국 선생과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산림녹화 성공 국가로 제3세계에 자랑스레 소개하는 한국의 숲과 그것을 만든 한국인의 강인한 의지를 가르쳐주자. 숲은 말이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다.

숲길 걷기

|트레킹 정보|

◇축령산 ▽찾아가기: 호남고속도로∼백양사 나들목∼우회전∼굴다리 통과∼모현사거리∼지방도 898호선(고창 방향)∼금곡영화마을 이정표∼금곡영화마을 ▽트레킹: 금곡마을에서 시작하면 임종국 선생 기념비와 수목장 느티나무까지 3.8km. 3.2km 지점 ‘우물’에 널찍한 휴게공간이 있다. ▽금곡영화마을: 축령산 삼나무 편백나무 숲길 들머리에 23호가 모여 이룬 작은 마을.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만남의 광장’ 등 여러 편의 영화에 무대로 등장해 이름이 났다. 초가집과 연자방아, 층계 다랑논 등이 남아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농촌 모습으로 소문났지만 기와교체 등 개보수로 옛 모습이 많이 남지 않았다.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맛 집: 담양과 장성은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25분이면 오가는 이웃. 장성 여행길에 담양도 함께 들르기를 권한다. 담양에는 대나무 테마파크인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 명물이 많다. 그리고 향토 맛도 기막히다. ▽신식당: 떡갈비를 담양의 대표 음식으로 등극시킨 그 식당이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떡갈비가 담양에서 이름난 것은 낙향 혹은 유배 온 선비를 통해 전래된 덕분. 경기도 것은 얇고 넓적한 데 비해 삼남 것은 도톰하고 동글다. 신식당에서는 아직도 저미어 세 번 양념한 갈비 살을 잔칼질로 곱게 다져 갈비뼈에 올린 떡갈비를 숯불에 구워낸다. 아쉬운 것은 갈비를 먹고 난 뒤의 식사. 갈비탕은 금방 떨어져 먹기 어렵고 국수나 밥은 좀 모자란 듯하다. 떡갈비는 1인분(3대 250g) 2만 원. www.sinsikdang.co.kr 061-382-9901 ▽담양 국수의 거리: 대나무의 고장 담양은 죽제품 장터로도 이름났다. 장터 하면 역시 장터국수. 그런 만큼 담양은 국수 맛도 일품이다. ‘담양 국수의 거리’는 그런 전통의 발현. 위치는 담양읍내. 관방제 숲(천연기념물 366호)가로 흐르는 관방천의 둑에 있는데 만성교와 향교교 사이가 담양 국수의 거리다. 국수 전문식당은 10여 곳. 모두 둑 위의 나무그늘 아래에 평상을 차렸다. 멸치 우려낸 감칠맛 나는 국물에 만 국수와 비빔국수가 있는데 모두 3000원. 대나무 잎이나 한약재를 넣고 삶은 계란(4개 1000원)도 일품이다. 진우네집 국수(담양읍 객사리 211-34)가 가장 유명한데 매달 15일은 휴무(공휴일일 경우엔 영업). 061-381-5344

◇트레킹 여행상품

승우여행사(www.swtour.co.kr)에서는 14일(일)과 20일(토)에 하루 일정으로 축령산 숲 트레킹을 다녀온다. 참가비는 4만5000원(점심식사 포함). 02-720-8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