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 올라타고 하늘을 나는 여인과 물고기 위에 물구나무 선 아이가 보인다. 야자수보다 더 큰 꽃송이가 바람을 타고 둥실둥실 떠 있다. 사람과 동식물 등 온갖 생명체가 한 식구처럼 자유롭고 즐겁게 어우러진 세상. 그 속에서 유쾌하고 행복한 색채의 에너지와 율동이 느껴진다.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현대 강남에서 열리는 화가 김병종 씨(서울대 교수)의 ‘길 위에서-황홀’전의 ‘모로코 기행’이다. 그림만큼이나 빼어난 글 솜씨로 사랑받아온 그는 틈만 나면 가방을 꾸린다. 유목민의 피를 타고난 듯 지구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 여정을 화폭에 녹여온 화가. 이번에는 북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연안의 짙은 체취를 ‘그림기행’으로 펼쳐 보였다.
전시장에서는 유럽화가들이 그토록 그림으로 담고 싶어한다는 튀니지 시디브사이드를 비롯해 알제리와 몰타, 라틴지역의 자연과 일상이 오롯이 스며든 작업과 만날 수 있다. 화가는 단순한 풍광만이 아니라 토착 문화와 외래문화가 때론 길항하고 때론 하나로 포개지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매력을 짚어낸다.
그는 “내 붓 길을 잡아끄는 것은 하나의 고유한 문화가 다른 문화와 겹쳐지면서 일으키는 파장의 부분”이라며 “그 파장을 일으키는 제3의 영역에서는 예외 없이 신비하고 독특한 색채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이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작품마다 강렬한 원색이 태양의 축제를 벌이지만 들뜨거나 가볍지 않다. 한지를 이용해 입체적 느낌을 더욱 살려내고 초록빛이 화면의 무게중심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마조렐의 정원’ 등 모로코 시리즈에선 단순한 형태의 녹색 나무가 시선을 압도한다. 나무가 숨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초록색이 그토록 강렬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나는 그곳에서 알았다. 창조된 첫 모습이 그러했을 것 같은 원색의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뿜어내는 영기는 나를 취하게 했다.”
신비하고 현란한 색채의 역동성을 생명의 온기로 번역해낸 그림들. 그 안에 삶에 대한 긍정이 숨어 있다. 02-519-08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