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의 발명/김행숙 지음/250쪽·1만4000원·케이포북스
“그대, 마음의 문을 열라. 사랑에 빠진 이들은 애원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진은영 ‘어쩌자고’)…벽이 열려 있는데, 문을 찾아 맴맴 도느라 밤잠도 자지 못하는 이여. 어지러운 풀숲에서 열쇠를 찾느라 바지에 물든 이여. 내가 그랬겠다. 당신의 어떤 시간처럼.” (프롤로그 ‘마음에 대하여’)
이 책은 시인이 만난 시인의 이야기다. 닫힌 문을 두드리는 대신 열린 벽을 통해서 만난다. 이들의 언어인 ‘시’를 통해서 말이다. ‘사춘기’ ‘이별의 능력’ 등 시집을 펴낸 김행숙 시인이 이성복 진은영 황병승 이원 강정 박상순 박형준 김명인 이수명 김언 시인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시인들 간의 만남과 우정의 순간뿐 아니라 열 명의 시인에 대한 작가론과 작품론을 함께 접해볼 수 있다.
저자는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을 펴낸 진은영 시인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윤동주의 아득한 초상을 떠올린다. 윤동주의 시가 지녔던 윤리성의 또 다른 미래형이 진 시인의 시론이나 시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동시대 시인들 중 별을 가장 많이 노래하는 사람이 진은영 시인”이라고 말한다. 진 시인에게서 받은 메일 전문을 그대로 실어놓기도 했다. 난해한 시로 비평가들조차 헤매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은 “우리는 감각의 (비)문법을 가지고 있는데, 의미의 문법으로 우리의 시를 읽으니 어렵고 난해해지는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해 보기도 한다.
박형준 시인을 만난 저자는 그를 ‘기억의 시인’이라고 말한다. 연필로 그린 세밀화처럼 부드럽고, 순하게 풍경화를 그려내는 것처럼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습 때문이다. 그런 면모는 저자가 인용한 박 시인의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 하련다’에 나오는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모두가 죽지 않는 유년의 王國에서,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 죽은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풍경 속에서…짙은 연못을 바라보는 일만으로 하루를 보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참담한 人生인가를.”
로커이기도 한 강정 시인, 사인펜으로 원고를 쓰는 이원 시인, 카프카를 떠올리게 하는 이성복 시인 등 저자의 시선을 통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