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運命이란 무엇인가? 운명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가, 바꾸어야 하는가? ‘논어’ ‘先進(선진)’편의 이 章은 범범한 듯한 人評(인평)의 언어 속에 깊은 성찰의 계기를 던진다.
공자의 말에 나오는 回는 顔回(안회) 곧 顔淵(안연), 賜(사)는 子貢(자공) 곧 端木賜(단목사)다. 其庶乎는 ‘거의 가까우리라’의 뜻이니 안회의 삶이 道에 가깝다고 평한 말이다. 其∼乎는 추측과 감탄의 어조를 포함한다. 屢空(누공)은 쌀독이 자주 빈다는 뜻이다. 不受命(불수명)은 운명을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貨殖(화식)은 재물을 불린다는 말이다. 焉은 단정의 어조를 지닌 종결사다. 億則屢中은 사고방식은 도리에 적중했다는 말이다. 億은 臆測(억측)이나 忖度(촌탁)의 뜻이다.
子夏(자하)가 말했듯이 당시 사람들은 富貴在天(부귀재천)이라 여겼다. 안회는 운명에 순응해서 安貧樂道(안빈낙도)했지만, 子貢은 운명을 개척해서 재물을 불렸다. 공자는 안빈낙도하는 안연에 대해 칭찬은 하면서도 그 가난을 애석해 했다. 또 자공의 삶에 대해서는 인위적 측면을 비판하면서도 그 사고방식이 자주 사리에 맞는 점은 인정했다.
물론 공자는 천명을 따르는 삶을 높이 쳤다. 하지만 쌀독이 자주 비는 屢空(누공)을 좋게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아침저녁 식사를 거르는 일을 도에 가까운 경지의 표준이라고 여긴다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굶주려야 할 것이다.” 인위적 화식은 결코 옳지 않지만 가난 자체가 得道의 표징은 아니다. 안빈낙도는 참 어려운 말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