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는 흔히 ‘비행(飛行)’에 비유된다. 마취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비행은 안전하게 이륙해 착륙하는 것으로 끝난다. 비행 도중 조종사가 비행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완전히 착륙하기 전에 조종간을 놓아버리면 사고가 난다.
의사 ‘부주의’와 밀접한 관계
마취도 마찬가지다. 수술 중 환자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의사가 자리를 떠버리는 순간 마취사고가 일어난다. 대형 수술이 아니라 성형수술, 치질 수술 등 가벼운 수술을 할 때 사고가 일어난다는 점도 마취사고가 ‘부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권무일 경희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는 37년 경력의 마취 전문의다. 그는 “이제야 마취가 두렵고 어렵다”고 말한다.
“전공의 3년차 때 세상의 모든 마취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마취 사고 한 번에 모두 날아갑니다. 마취 전문의 10년차에는 누구나 한두 번쯤 마취사고를 겪게 됩니다.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환자 개개인에게 한순간이라도 소홀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경험 있는 마취과 의사는 수술 도중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하지 않고 수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안다. 얼마 전 치질 수술을 받다가 마취사고로 사망한 40대 주부 A 씨 사건과 관련해 법원은 담당 의사에게 1억4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작은 외과를 운영하던 이 의사는 본인이 환자를 마취시키고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난 후 환자 상태를 살폈을 때 환자는 이미 심장이 멎어있었다.
이런 일은 대개 수면진정제와 진통제만 써도 되는 가벼운 수술일 때 일어난다. 큰 수술이라면 근육이완제까지 투여하고 근육이완제가 투여되면 자가 호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공호흡튜브를 끼운다. 하지만 작은 수술은 근육이완제 없이도 할 수 있고 자가호흡도 가능해 튜브를 끼우지 않는다. 그러다 일시적으로 혀가 기도를 막아 호흡할 수 없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때 빨리 기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고가 난다. A 씨도 심장정지와 호흡정지가 발생한 시기를 의료진이 놓쳐 사망했다.
마취 전문의들은 일반 의사들이 마취약제의 위험성을 알아야 마취 사고가 예방된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대부분의 마취약제는 순환과 호흡을 억제할 수 있다”며 “약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춘 의사가 환자 상태를 감시한다면 마취 사고의 대부분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땐 마취기록지부터 챙겨야
마취 사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할 때는 마취진료기록지부터 확보해야 한다. 마취기록지는 혈압, 맥박, 심박수와 호흡 패턴(자가호흡 여부), 산소포화도에 대한 기록이다. 수술 도중 환자 상태가 어땠는지, 의료진이 환자를 충분히 살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인 셈이다. 마취기록지가 없다면 기록을 하지 않은 것, 즉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