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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뜨는 群山

입력 | 2009-06-15 03:00:00


대한제국이 군산(群山)을 개항한 것은 1899년이었다. 개항 당시 588명이 거주했던 한적한 항구는 일제강점기에 부산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곳으로 급성장했다. 인근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이 군산항을 거쳐 반출됐다.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는 활황기 군산을 무대로 한 소설이다. 소설에 나오는 정 주사는 고향에 있는 재산을 정리해 군산에 이주한다. 군산에는 쌀을 선물(先物)로 거래하는 미두(米豆)장이 있었다. 투기장이나 다름없었던 미두장에서 그는 가산을 탕진하고 몰락한다. 군산은 쌀과 관련된 산업으로 번성했으나 광복 이후 오랜 침체에 빠졌다.

▷군산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지방 도시들이 만성적인 인구 유출로 시름이 깊은데도 군산 인구는 지난 2년 사이 5000명 증가했다. 옆에는 광활한 새만금 사업지가 있어 군산이 갈수록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다. 2007년 현대중공업의 조선소를 유치한 것도 활기를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시 당국은 지난 3년 동안 397개 기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발표된 개별 공시지가 산정에서 군산의 땅값은 지난해보다 14.2% 상승했다. 다른 지역의 공시지가가 대부분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군산은 오랫동안 지역 경제의 쇠퇴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방이 살아날 길은 기업 유치뿐이라고 판단한 시 당국은 공무원들이 기업 유치를 해오면 특별 승진을 시키고 이전 기업에는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독이 들어서는 군산조선소가 내년 2월 완공되면 대규모 인구 유입이 기대된다. 지방의 활로는 기업이 얼마나 그 도시에 매력을 느끼고 찾아와 주느냐에 달려 있다.

▷군산은 문화적 잠재력도 갖추고 있다. 과거에 영화를 누린 도시답게 군산은 개항 이후 지어진 근대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옛 조선은행, 세관 건물 등 100여 채에 이른다. 다른 도시 같으면 도시개발 과정에서 벌써 헐렸겠지만 도시의 오랜 침체로 개발의 손길이 비켜간 덕분에 살아남았다. 영화와 TV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고, 구(舊) 도심 일대를 근대문화 테마단지로 조성하자는 문화계의 목소리가 높다. 현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특별한 도시, 군산의 미래에 거는 기대가 크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