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공단 진입로. 공단 설비 취재차 찾은 이곳의 길을 달리다 보니 도로 옆 풀숲에 세워진 경찰차 몇 대가 눈에 띄었다. 버스 한 대가 지나가기도 빠듯한 편도 1차로 도로에 웬 경찰차인가 싶었다. 그런데 잠시 뒤 나온 좀 더 넓은 길엔 아예 전경들이 탄 버스까지 정차해 있었다. 석유화학공단에 왜 이리 많은 경찰이 있는 건지 의아할 뿐이었다.
궁금증은 공단에 도착해서야 풀렸다. 11일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 때문에 이 일대에만 4개 중대의 경찰력이 배치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현장 관계자는 “오늘은 어제보다 파업이 격해질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긴장한 분위기”라며 “작년처럼 심한 마찰이 일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는 화물 차주들에게 악몽 같은 한 해였다. 가뜩이나 열악한 근로여건에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는 고유가 부담을 떠안아야 했던 이들은 날로 심해지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밤샘운전에 나선 차주들의 졸음운전 사고도 잇달았다. 이 때문에 작년 화물연대의 파업투쟁은 유독 격렬했다.
공단 관계자는 “당시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공단을 드나드는 비조합원의 차량은 돌에 맞아 부서지거나 타이어에 펑크가 나기 일쑤였다”며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려던 사람도 결국엔 (같은 차주들에 의해) 일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됐다”고 전했다. 당시 기업들의 생산 활동도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올해 상황은 지난해보단 낫지만 벌써 13일까지만 17건의 차량 파손과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운송거부에 불참한 동료 차에 ‘새총으로 쇠구슬을 쏜’ 화물 차주가 구속되는 사건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대산공단에 정유설비를 증설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의 한 관계자는 “올해 파업도 게릴라식 투쟁으로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이미 지난달 한 달 치의 철근, 파이프 등 건설 자재를 미리 가져다 놨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위기에 미리미리 대처한 기업의 준비성에 웃어야 할지, 아니면 매년 반복되는 파업에 이골이 난 산업계의 현실에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공단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도 경찰차와 전경차, 그리고 화물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오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 내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산업계의 ‘슬픈 자화상’은 언제쯤 바뀔지, 공단을 떠나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대산석유화학공단에서
임우선 산업부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