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광주 북구 일곡동에서 음주운전자 이모 씨(48)의 차에 치인 초등생 A 군이 병원에 들어가 문의하다(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이 되지 않자 병원을 나서는 모습이 병원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후 이 씨는 A 군을 차에 태워 전남 담양군의 한적한 곳에서 공기총으로 살해했다. 사진 제공 광주지방경찰청
‘음주운전 사고 뒤 초등생 살해’ 범인 진술 번복
초등생, 걸어서 병원 들르는 모습 CCTV에 찍혀
무면허 음주 운전자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뒤 공기총으로 살해돼 유기된 초등학생 A 군(11)이 교통사고 당시 가벼운 부상만 입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용의자 이모 씨(48·인테리어업)는 당초 A 군이 차에 치여 숨진 것 같아 살해했다고 진술했으나 이는 거짓 진술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만취운전자의 끔찍한 초등생 살해
초등생 공기총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 북부경찰서는 13일 살인 등 혐의로 구속된 이 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A 군이 멀쩡하게 일어나 걸어가자 음주운전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A 군을 차에 태우고 가다 공기총으로 쏴 살해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이 씨는 4일 오후 8시 반경 광주 북구 일곡동 모 아파트 앞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태권도장을 마치고 귀가하는 A 군을 승합차로 치었다. 이 씨는 당초 경찰에서 “A 군이 당시 의식을 잃어 급히 차에 태웠다. 운전석 옆에 태우고 가는 도중 A 군이 신음해 살해한 뒤 시체를 계곡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 군이 사고 당시 멀쩡했다는 목격자들의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A 군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는데도 잔혹하게 살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친구 2명과 함께 귀가하다 사고를 목격한 한 여고생은 “초등학생이 차 앞 범퍼에 치인 뒤 잠시 앉아 있다 일어나 도로 옆 인도로 걸어갔다”며 “40대 남자가 초등학생에게 뭔가 말을 건네자 학생이 그 차에 탔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서 장사를 하던 상점 주민들도 “사고 당시 아이가 머리에 피를 조금 흘렸지만 멀쩡했다. 사고 운전자가 부축해서 차에 태우기에 병원으로 데려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경찰이 사고 당시 A 군이 멀쩡했다는 목격자들의 주장을 토대로 당시 사고 경위를 집중 추궁하자 거짓 진술을 했다고 자백했다. 이 씨는 “차에 치인 A 군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어나 도로 옆 인도를 따라 30m 정도 걸어가자 A 군을 따라가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태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사고 현장에서 1km 정도 떨어진 병원에 들렀는데 MRI 촬영이 안 돼 다시 차에 태운 뒤 전남 담양군의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공기총으로 살해한 뒤 시체를 버렸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A 군과 함께 병원에 들른 것은 확인됐으나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고 담양으로 가서 A 군을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씨가 사고현장에서 11km 정도 떨어진 담양군 고서면 한 저수지 옆 도로에서 운전석 옆 좌석에 멀쩡하게 앉아 있던 A 군의 머리와 가슴 등에 공기총 6발을 발사해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A 군의 시신은 이곳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담양군 남면 한 계곡 절벽 아래에서 발견됐다.
이 씨는 13일 현장검증에서 총으로 살해한 A 군의 시신을 차에 싣고 인적이 드문 산속을 돌아다니며 유기할 장소를 찾는 모습을 재연했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A 군의 장례가 치러졌다. A 군을 실은 영구차는 화장장으로 떠나기 전 A 군이 다니던 학교에 들러 유족 20여 명과 교장, 담임교사 등 교직원들의 오열속에 20분간 학교에 머문 뒤 광주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