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 효과 좋아 식중독균, 대장균, 충치균 등 제거… 항암효과 있는 흑초, 건강식품으로 각광
1950년대 부엌 부뚜막 한구석에 있던 의문의 유리병. 먼지가 소복하게 앉았지만 신줏단지 모시듯 귀히 여긴 흔적은 역력하다. 어머니는 그 병에 든 ‘정체불명’의 액체를 음식에 넣었다. 뜨거운 여름 땀을 많이 흘린 날이면 이 액체를 물에 타서 자식들에게 먹이기도 했다. 이 액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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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얕봤던 잡초, 알고 보니 약초 ‘민들레와 엉겅퀴’ 바로 식초다. 쓰고 남은 술지게미를 삭혀 만든 식초. 1950, 60년대 식초는 국내 가정에서 주로 이런 방식으로 직접 만들어 썼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발효식품은 와인이다. 그 다음이 식초다. 술을 더 발효시켜 시어지면 식초가 되기 때문이다.
시큼한 향에 군침이 사르르 돌며 입맛을 돋우는 식초. 뜨거운 여름, 상큼한 오이냉국 한 사발이면 흐르던 땀이 씻기고 칼칼했던 입맛이 돌아온다.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는 조미료의 양대 산맥은 참기름과 식초. 고소함의 대명사가 참기름이라면 상큼함의 여왕은 단연 식초다. 음식 재료의 신선한 느낌을 잘 살려줘 요리가 돋보이도록 하는 ‘어시스트(조력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자연이 준 기적의 물
고대부터 식초는 음식의 독을 제거하는 데 쓰거나 건강과 미용을 위한 약으로 많이 사용됐다. 현대에 와서 비만, 암, 성인병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식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의 건강전문 저널리스트 칼 오레이는 식초에 대해 ‘자연이 준 기적의 물’로 표현했다. 2005년 11월 방송된 KBS1 TV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식초에 대해 ‘1만 년의 지혜’라고 칭하며 식초로 병을 이긴 사람들의 사례와 식초의 효능을 소개한 바 있다. 식초의 효능을 밝힌 연구로 탄 노벨상은 3개나 된다. 1945년 핀란드, 1953년 영국, 1964년 미국에서 수상했다.
○ 서양은 포도주, 한국은 막걸리에서 식초 만들어
식초는 영어로 ‘vinegar’다. 프랑스어 ‘vinaigre’에서 비롯된 것으로 ‘vin’은 ‘포도주’란 뜻이고 ‘aigre’는 ‘시다’란 뜻이다. 술로부터 신맛을 얻어냈다는 의미. 서양 최초의 식초 또한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 식초의 역사를 술의 역사와 유사하게 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야채를 절여 김치처럼 만든 것을 삭히거나 매실을 발효시켜 식초대용으로 썼다. 식초의 한자어인 ‘酢(초)’ 역시 ‘술이 시간이 지나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는 형성문자다.
국내에서도 처음에는 매실로 식초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주로 막걸리를 발효시켜 식초로 사용했다. 조선시대 요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따르면 처음에는 중국과 같이 ‘초(酢)’를 쓰다가 ‘음식의 독을 물리치는 기능’이 있다고 여겨 이를 의미하는 ‘초(醋)’로 바꿔 썼다고 나온다.
1960년대에는 화학약품인 ‘빙초산’을 물에 희석해 식초로 쓰기도 했다. 빙초산은 석유에서 추출한 에틸렌을 산화시켜 만든 것으로 영양분이 전혀 없다. 현재는 빙초산으로 만든 식초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에서도 빙초산을 독극물로 분류해 식초라고 표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 유기산, 각종 아미노산, 미네랄 풍부-고혈압, 비만에 좋아
식초는 과일이나 곡물에 발효 주정을 넣어 발효, 숙성시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초산균이 발생한다. 초산균은 신맛을 내는 초산, 구연산, 젖산 등 유기산과 아미노산 등 영양분을 만든다.
히포크라테스는 식초를 사용해 환자의 질병을 치료했다. 절세미녀 클레오파트라는 미용을 위해 식초에 천연진주를 녹여 만든 액체를 즐겨 마셨다.
우리 역사를 통해 보아도 향약구급방,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 전통 의학서적에는 식초를 의약품의 재료로 활용해 질병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식초는 부드럽고 약한 산으로 초산, 젖산, 구연산 등 유기산이 주성분. 예로부터 미생물을 죽이는 살균력이 뛰어나기로 이름났다. 식중독이나 병원균을 죽여 질병을 예방하고 식품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유지시켜 준다. 소화기관의 유해 균, 입속의 충치 균, 살모넬라균, 대장균, 장티푸스균 등 각종 균은 식초 속에서 죽는다. 회를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생선에 있는 미생물을 죽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식초는 피로하면 근육에 생성되는 젖산을 분해하는 기능이 있어 피로회복에 뛰어나다. 또한 혈액의 점도를 낮추고 혈관 내벽에 붙은 콜레스테롤을 제거해 혈관의 유연성을 높여주는 효능이 있다. 당이 지방으로 변하는 것을 막고 지방 대사를 촉진하기 때문에 고혈압, 동맥경화, 비만을 예방한다. 혈액을 정화시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위장병, 신경통 등 많은 질병을 예방하고 피부미용, 비만, 노화방지에 도움을 준다.
자체 살균력이 뛰어난 식초는 별도의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는다. 식초는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드레싱 소스 등 각종 조미식품을 만드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재료. 미생물 번식을 막아 식품의 변성을 방지하고 독특한 신맛으로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다.
○ 항암효과 탁월한 알칼리 식초, 흑초
다양한 식초 중에서 현미를 원료로 하는 흑초는 식초 중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체내에서 만들 수 없는 필수 아미노산, 그 외 각종 아미노산, 칼슘, 철, 미네랄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체내 흡수율도 높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흑초의 영양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조미료보다는 건강식품으로 취급한다.
일반 식초와 달리 흑색을 띤다. 신 냄새가 약하고 달콤한 맛이 나며 부드러워 마실 때 부담도 적다. 흑초는 일반 식초와 다른 발효법으로 제조된다.
흑초는 대장암 등에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이 일본 연구진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2003년 일본 교토대와 가나자와의대는 흑초가 대장암 예방효과가 있다는 것을 동물실험에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 식초발효 기술의 혁신 2배, 3배 식초
맛있는 식초는 향이 좋고 부드러운 신맛을 가지며 투명한 색을 띤다. 식초의 산도는 유기산의 함량으로 결정된다. 유기산은 초산균을 발효시키면 생성된다. 생성된 유기산은 오히려 초산균을 죽이는 살균 기능이 있어 과거에는 식초의 산도를 6% 이상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고 페니실린 등 발효기술이 발달하면서 식초 제조기술도 발전했다. 초산균을 발효시키는 데 필요한 산소를 정밀하게 공급하고 제어하게 되면서 산도를 18%까지 올릴 수 있게 됐다.
일반식초의 산도는 6∼7%다. 산도가 13∼14%인 것을 2배식초, 17∼18%인 것을 3배식초로 분류한다.
산도 수치가 높은 식초일수록 산의 농도가 짙은 식초라는 의미다. 산도 즉, 배수가 높을수록 적은 양으로 풍부한 식초의 향미를 느낄 수 있는 셈. 제품 라벨에 써있는 ‘2배식초’ 또는 ‘3배식초’가 그 의미다. 3배식초는 일반식초의 3분의 1만 사용해도 동일한 신맛을 낼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