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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에너지는 가라앉고 잘 정돈된 모범답안만 눈에

입력 | 2009-06-16 02:56:00


■ 2009 베니스 비엔날레 가보니

베니스 비엔날레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비엔날레로 예술감독이 만드는 본전시관과 각 나라에서 기획하고 참여하는 국가관으로 구성된다. 여타의 비엔날레는 본전시로 구성되는 데 비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가관 제도로 인해 국가관상을 받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특별한 전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올해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미국관의 브루스 나우먼이 차지했다. 나우먼의 예전 작업을 회고전처럼 미국관뿐만 아니라 베네치아건축대와 외국어대 등 세 군데에서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가관상은 국가관의 전시보다는 작가의 여태까지의 활동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주는 상이라는 게 이번 나우먼의 수상에서 알 수 있다.

2009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는 양혜규 씨의 단독전이 열리고 있다. 2년 전 이형구 씨의 개인전에 이어 한국관에서 열리는 두 번째 단독전이다. 한국관 전시에서는 블라인드를 이용한 작업, 그 옆 공간에 비디오 작업을, 안쪽 방에는 부엌을 변형한 작업을 보여주었다. 전시 연출에서 창문으로 둘러싼 한국관 빌딩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공간을 전혀 막지 않아 밖과 안이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2년 전 이 씨의 한국관 전시가 어둡고 드라마틱한 연출을 하였다면 양 씨는 공간을 열고 밝게 공간을 사용하여 2년 전과 대비를 이루었다.

양 씨는 이전 작업에서 극장같이 어두운 공간에 ‘빛’을 사용한 작업을 보여주었으나 한국관 전시에서는 빛보다는 원초적인 감각인 냄새, 소리 등의 요소를 사용했다. 미술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시각적인 언어가 아닌 감각을 사용해 냄새나 향, 선풍기의 바람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인 아르세날레에도 초대받은 양 씨는 조명작업을 전시했는데 한국관 작품보다 더 시각적인 작업이다. 다른 형태의 조명이 선으로 연결되고 작가의 기억과 연관된 물건들이 조명과 연결되어 있다. 이전부터 작가가 다루어 온 접힌 기억과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본전시 초대작가인 구정아 씨의 작업도 아르세날레 정원과 자르디니 공원에 설치됐다. 구 씨의 작업은 관객이 일부러 찾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면이 있는데 이번에도 많은 관객들이 작품을 찾는 데 실패했다.

비엔날레 중 베네치아의 여러 곳에서 전시가 열리는데 이들 전시에서 주제나 전시 방식에 있어 본전시보다 흥미로운 방식의 시도를 볼 수 있었다. ‘INFINITUM’(무한대)이라는 주제전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그룹전으로 이우환, 김수자, 배병우 씨의 작업이 포함돼 있었다. 전시는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층마다 다른 전시 방식으로 특징 있게 구성됐다. 1층은 일반 전시장과 비슷하다면 2층은 일본 집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도자기와 그림을 배치했다. 3층은 유럽 귀족의 집에 초대된 듯한 분위기로 꾸몄다. 여러 시대의 작업이 집 안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벽에 걸리거나 놓여 있었다. 4층에서는 작가들이 퍼포먼스를 하거나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시 장소에 비해 작품 수와 전시 방식이 흥미로워서인지 한참을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2009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년에 비해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잘 만들어진 전시이긴 하지만 작가들이나 작업에서 보이는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았고 특별히 뛰어난 작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비엔날레가 보여주던 ‘새로움’에 대한 접근보다는 중요 작가들의 작업을 잘 정돈해 보여주는 전시가 많았다. 이런 식의 비엔날레라면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룹전시나 주제전과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왜 비엔날레가 계속되어야 하는지, 어떤 전시를 비엔날레에서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