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속 여성 캐릭터로 본 한국형 리더십 이미지
연세대 황상민 교수 분석
《“나를∼ 따르라!” 이 대사가 나올 법한 사극 드라마 장면을 잠깐 상상해보자. 굵다 못해 무거운 저음, 수염이 얼굴을 반 이상 덮은 장수가 떠오르는 게 보통일 터. 하지만 요즘 지상파 TV만 놓고 보면 이는 딱히 맞는 말도 아니다. MBC ‘선덕여왕’과 KBS ‘천추태후’, SBS ‘자명고’. 방송 3사 사극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물론 ‘여인천하’나 ‘대장금’도 여성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미실(고현정)과 덕만(선덕여왕·이요원), 천추태후(채시라), 그리고 자명공주(정려원)와 낙랑공주(박민영). 일국의 군주나 공주로서 국정을 운영하는 ‘국가 리더형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 건 새로운 흐름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현대적 관점에서 어떤 유형의 리더로 볼 수 있을까.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에게 의뢰해 여성 사극 캐릭터 5인의 ‘한국형 리더십 이미지 분석’을 시도했다. 주관성, 편향성을 피하기 위해 동아일보 방송팀이 황 교수가 개발한 문진표에 따라 이들의 리더십을 계량화한 다음, 황 교수가 측정분석틀에 맞춰 해석 결과를 내놓았다.》
미실 - 치밀형 리더십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부주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선덕여왕’ 3회에서 실수한 부하들을 직접 칼로 베며)
미실은 일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은 영화 ‘대부’의 마피아 보스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가 떠오른다. 황 교수가 구분한 리더십의 네 가지 특성인 △영웅형 △열정형 △치밀형 △관계형 가운데 미실의 치밀도 점수는 다른 항목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치밀형은 말 그대로 꼼꼼하고 세심한 완벽주의자. 이런 스타일은 대체로 권위적이며 워커홀릭이 많다. 감정에 휘둘리진 않지만 명분을 중시한다. 몰입도가 높아 시간을 두고 꾸준하게 성취를 이루는 작업에 알맞다. 싸늘할 정도로 냉정하지만 의외로 타인의 평가에는 민감한 편.
덕만 - 열정형 리더십
자라서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공주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가득하다.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힘들게 자라면서도 서양 문물과 외국어 익히기에 열심이다. 다양한 도전을 즐기며 전문성을 갖추려 노력하는 ‘열정형’의 전형적 특징. 분석 결과도 덕만의 열정도는 52.7로 30∼40점대인 다른 항목보다 월등했다.
열정형은 말 그대로 인디아나 존스처럼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사고방식을 가졌다. 학구열이 높아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려고 애쓴다. 새로운 영역이나 시장 개척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열정형은 동료나 부하에게도 인기가 많은 편. 하지만 의외로 겸손을 가장한 내적 오만이 가득한 이도 이 유형에 많다. 자기 스타일만 강조해 주위에서 불편해할 수도 있다.
천추태후 - 관계형 리더십
태조의 손녀이자 경종의 왕후. 채시라가 맡은 천추태후는 ‘대고려’를 만들겠다는 이상 실현을 위해 자신의 혈육과도 정적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흩어져 사는 고구려와 발해, 신라인들을 아우르는 그의 통치력은 동양적 리더의 전형에 가까운 ‘대형(大兄)’ 스타일. 마이클 콜리오네의 아버지 돈 콜리오네(말런 브랜도)를 닮았다.
관계형은 좌중을 압도하면서도 친화력도 높아 인간적 매력이 강하다. 무심해 보이지만 환경 변화에 민감하며 상황 판단이 빠르다. 동료나 부하들에게 동기 부여를 잘해 목표 달성에 능숙하다.
정을 중시하고 의리가 있지만, 그 때문에 자칫 업무 진행이 비합리적이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자주 드러나 무모한 기분파로 비칠 때도 있다. 다른 유형에 비해 위기 대응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
자명 & 낙랑 - 혼합형 리더십
황 교수에 따르면 네 가지 리더십 유형 가운데 영웅형은 현실에선 만나기 힘든 캐릭터.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정도 돼야 영웅형이라 부를 수 있다. 실제 현실 속 리더들은 치밀형 열정형 관계형 중 하나의 특징을 지니거나 모든 특성이 섞여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자명과 낙랑은 현대사회로 볼 땐 가장 설득력 있는 품성을 지녔다. 점수 결과도 네 가지 리더십 유형 특성이 고르게 나타났다. 평범한 보통 사람은 대부분 혼합형에 해당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나라를 뺏긴 뒤에도 일념으로 백성들을 되찾고자 하는 자명공주는 치밀형의 특성이 다분하다. 낙랑공주는 자명고를 찢어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지만 스케일이 크고 결단이 과감해 의외로 영웅형 점수가 높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