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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동필]막걸리 부활이 일깨운 ‘시장 자율’

입력 | 2009-06-16 02:56:00


막걸리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우리 전통술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서민과 애환을 함께했지만 싸구려 취급을 받던 막걸리 소비량이 지난해 17만6398kL로 2003년의 13만8162kL에 비해 27.7% 증가했다. 인삼막걸리 잣막걸리에 이어 포도 복분자 오미자로 만든 다양한 막걸리가 젊은 소비자의 인기를 끄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무려 5457kL를 수출했다. 거칠게 막 걸러서 막걸리라 한다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야말로 가난한 농사꾼이나 마시던 서민의 술이 이렇게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막걸리 붐은 경기침체로 값싼 술을 찾거나 건강식품으로서 막걸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추세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제품의 다양화와 고급화, 그리고 시장 확대는 주류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가 없었다면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막걸리를 ‘알코올 성분 6도 이상’으로 설정하는 등 제품규격과 제조방법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쌀을 원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수출은 고사하고 양조장이 있는 시군지역 밖으로 반출하지 못하게 공급 구역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 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과 함께 우리 전통주를 산업적으로 육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1993년부터는 농림부 장관이 추천하면 주류제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막걸리는 대부분 수입 밀가루를 원료로 사용하므로 전통주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채 방치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규제를 정비하면서 막걸리 제조허가에 필요한 허가 용량과 시설기준을 완화하고 신규제조 면허금지 조항을 삭제해 누구나 쉽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췄다. 또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제품생산을 위해 막걸리의 규격을 알코올 성분 ‘3도 이상’으로 조정하고 인삼 잣, 대추, 그 밖의 과일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다양한 고급 막걸리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또 용기의 재질을 다양화하고 유통업체에 적용했던 일정한 시설과 자본 확보 의무규정을 완화하는 한편 공급구역 제한을 폐지해 전국적 유통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국내에서 주세법을 제정한 때는 1909년이다. 식민지 개발에 필요한 재원확보에 골몰하던 일본인 재정고문의 제안에 따라 주류면허제를 도입하고 허가받은 업체에만 제조를 허용하는 대신 주세를 부과했다. 그 후 1934년 조선총독부 통치 25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조선주조사’에서 조선신탁회사의 미키 세이이치(三木淸一)는 국세의 30%나 되는 주세를 징수한 성과를 기려 ‘은총의 주조업’이라고 칭송했다. 2008년을 기준으로 보면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줄었지만 2조5000억 원에 이르는 주세를 내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세금을 납부하고도 수입 원료에 의존하는 몇몇 소주와 맥주업체만 판을 칠 뿐 제대로 된 우리 전통술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류정책에 대한 반성 여론이 일고 있다.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 산업의 육성은 원료 농산물의 소비와 도농 교류 촉진을 통해 농가소득을 증대하고 농촌경제를 활성화하며 국민건강 유지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통주 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역에서 생산된 고유한 원료와 물,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술을 개발하고 이를 정확하게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리는 고급 지역 특산주의 생산과 차별적 유통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막걸리의 부활은 징세 편의를 위한 획일적인 규제보다 시장의 자율과 기업가의 창의에 의해 산업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