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주력했던 일 중에서 한 가지가 사교육비 경감대책이다. 국회의원들이 심야교습금지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는가 하면 KAIST가 도입하기 시작한 입학사정관 제도를 확대 실시하려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원금까지 주는 것도 그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사교육과 조기유학이 근본적 원인, 곧 학생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기에는 공교육이 턱없이 부실하다는 현실의 타파 없이 법으로 교습을 금지하고 필기시험을 없앤다고 줄어들 것인가. 업적주의식 졸속행정의 또 하나의 예만 낳지 않을까 걱정된다. 개별화된 양질의 교육에 대한 수요와 일정 정도의 구매력이 공교육 체계를 통해 충족되지 못하는 한 사교육 시장은 형태만 달라질 뿐 위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입학사정관 제도란 구술시험 방식의 종합평가를 통해 신입생을 선발함으로써 점수 위주 평가의 편협성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현행보다 세련된 제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몇몇 학교만이 부분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인적 자원을 구비하고 있다. 불신이 팽배하고 구술시험 전통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졸속으로 훈련 받은 사정관이 동원될 때 불공정 의혹이나 학력 저하 등 부작용이 일지 않을까 염려된다. 구술시험 형식의 종합평가에는 시험관 자신의 철학과 안목 등 주관적 요소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학교는 불신에서 오는 항의를 차단하기 위해 사정관의 평가를 수치화해서 결과적으로 구술시험이 갖는 통합적 평가의 이점을 죽이는 현상도 나오고 있다. 사정관의 역할은 성적이나 추천서, 학생이 제출하는 논술 등 다른 평가 자료의 활용과 상호배제적일 필요가 없다. 제도의 도입만으로 공교육의 질이 급격히 향상되고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부모 입맛 맞추려고 정책 남발
국회나 교육당국은 학부모 눈치를 살피느라 지엽적 문제에 매달리며 이런저런 정책을 남발하지 말고 이 나라 공교육이 목표로 삼아야 할 가치가 무엇이고, 어떤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해야 할지를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큰 틀에서 여야 없이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공교육의 첫째 목표는 지구촌 누구와도 더불어 살 줄 아는 도덕적 품성과 시민 정신을 길러주는 데 있다. 그 다음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는 데 있다. 국가의 기본공통 교과과정은 그런 목표에 맞게 설계하고 시험제도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는가를 점검함으로써 교육효과를 높이도록 운영해야 한다.
이런 큰 틀에서 본다면 구술시험도 필기시험도 결국은 평가 방법 중 하나이지 수준과 내용의 문제는 아니다. 객관식은 출제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반면 채점을 기계화할 수 있고 주관식 질문은 간단해도 평가에는 고도의 어려움이 따르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소수의 엘리트를 발탁하는 경우에는 주관식·구술시험을 선호하는 반면 많은 수의 사람을 다룰 적에는 객관식 방식에 의존한다. 출제 양식이 달라진다고 평가 결과에 큰 차이가 난다면 진정한 실력이요 공부요 제대로 된 평가제도였다고 말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평가시험 출제의 난이도는 지금 이 시점에서 미래 주인공이 교육단계별로 반드시 갖출 실력이 전 세계적 수준에 비출 때 어떤 수준이 되어야 하는가에 맞춰 결정할 일이지 학부모의 아우성에 따라 쉬웠다 어려웠다 춤을 추게 놓아 둘 일이 아니다. 의사의 의무는 환자의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지 환자의 비위를 맞추려 약을 달라는 대로 주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출제 동향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발상은 정치적이지 교육적인 생각이 아니다. 인생에서 부닥치는 문제에는 예고된 형식이 없고 과외를 통해 답을 준비할 수 없음을 교육을 통해 터득시키는 일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다.
시간 걸려도 공립교육 강화해야
국회나 정부가 지원과 독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점은 누구나 싼값으로 갈 수 있는 공립학교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교육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공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나오는 사교육을 법으로 막으려 하고 사립학교 운영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관료적 접근보다는 공립교육을 강화하며 사교육 시장에 투입되는 인적 물적 자원을 흡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훨씬 더 근본적이며 효과적으로 국가의 교육경쟁력을 높이고 사교육비를 줄임으로써 교육의 기회가 재력이 아니라 노력과 능력에 맞게 공정하게 돌아가게 보장하는 길이다. 국민도 정치인도 교육문제는 정치적 타산이 아니라 교육 원리에 따라 풀어나가는 자세와 참을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