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다. 목엔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50세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얼굴. 그러나 시선이 몸으로 내려오니 얘기가 달라졌다. 팔뚝은 섬세한 근육으로 다져졌다. 허벅지는 말 다리처럼 단단했다. 자원봉사차 대회장에 왔다는 한 여대생은 그의 몸을 보고 “남자친구에게 트라이애슬론을 시켜야겠다”며 웃었다. 그는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당당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가쁜 숨을 몰아쉰 그의 한마디. “다시 한 번 완주할 수 있을 만큼 힘이 넘치네요.”
김병두 씨 얘기다. 김 씨는 14일 강원 삼척시,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 일대에서 펼쳐진 2009 하이원 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에 참가한 선수 중 최고령자다. 올해 63세인 그는 이번 대회에서 20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동호인 60대 부문 3위에 오를 만큼 기록도 좋았다.
‘나이를 잊은’ 철인들은 이날 김 씨 말고도 여럿 눈에 띄었다. 엘리트 여자부 우승자 테레자 마첼(체코)은 35세다. 10년 정도 슬럼프를 겪던 그는 최근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트라이애슬론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일반인 선수들은 아예 40대 이상이 주류다. 동호인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을 낸 이성엽 씨는 47세다. 전체적인 기록을 비교해도 20, 30대와 40대 이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트라이애슬론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수영, 사이클, 달리기로 이어지는 험난한 과정을 뚫어낸 사람에겐 ‘철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험한 스포츠에서 노익장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김진용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 회장(53)은 “순발력보다 지구력이 필요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꾸준히 훈련만 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그 성과가 기록으로 반영되는 ‘정직한 스포츠’란 게 그의 설명이다. 60대 이상 동호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경수 씨(62)는 “오히려 부상의 위험이 작은 것이 트라이애슬론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이재범 씨(52)는 성취감을 이유로 들었다. 나이를 이기고 한계를 극복했을 때의 희열은 해 본 사람만이 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트라이애슬론을 두고 ‘선진국 스포츠’란 말을 자주 한다. 일부에선 그 이유를 사이클 등 비싼 장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기 현장을 직접 지켜본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나이에 상관없이 빠질 수 있는 ‘국민 스포츠’이기에 선진국 스포츠로 불리는 건 아닐까.
신진우 스포츠레저부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