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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하버드대 교수 아프간 전쟁터를 누비다

입력 | 2009-06-16 02:56:00


파커 응용과학 교수 화제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킷 파커 씨(43·사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학생에게 응용과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현재는 교수직을 잠시 쉬고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군인이다. 그는 대학교수와 군인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직업을 번갈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 육군 제10산악사단 3여단 소속 소령으로 아프간 땅을 밟은 뒤 무장세력과 많은 교전을 치렀다. 수차례 생명의 위협을 넘기기도 했다.

그는 14일 아프간 주둔 미군 기지에서 가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여 년 전 보스턴대 재학시절 옛 소련군과 무장세력 간 전투를 다룬 학교신문 기사를 읽고 아프간을 처음 알게 됐다”며 “내가 이 지옥 같은 곳에 서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교수와 군인이라는 ‘이중생활’을 시작한 계기는 2001년 9·11테러. 그는 당시 보스턴대 생의학공학 학사를 거쳐 테네시 주 밴더빌트대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응용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학자였다.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 예비군 자격도 내놓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붕괴되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한 그는 군복을 입기 위해 학문에 대한 사랑을 잠시 접기로 했다. 분노와 애국심이 그를 뒤흔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하버드대가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파커 씨는 당시 하버드대 공학·응용과학과 학장이었던 벤커테시 내레이언애머티 교수를 찾아가 “아프간에 가서 싸우는 1년 동안 기다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학장은 “하버드대 교수 중 어느 누구도 참전을 위해 휴가를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당황스러웠다”면서도 “국가에 대한 봉사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부교수로 채용된 파커는 1년간 휴직을 허락받았다.

미혼이었던 그는 2002년 미 육군 제82공수사단 소속 대위로 탈레반 핵심지역인 아프간 남부에 배치됐다. 칸다하르 주와 자불 주의 광대한 사막지역을 순찰하면서 무장세력과 교전을 벌였다. 때로는 주민들과 차를 나눠 마시며 민심수습을 위해 노력했다.

하버드대는 머나먼 전쟁터에 가 있는 파커 씨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땀과 흙먼지로 뒤범벅이 된 채 순찰에서 돌아온 어느 날 커다란 소포 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수북이 쌓인 대학 입학신청서류들과 함께 한 장의 쪽지가 나왔다.

‘학생들의 대학 입학신청서류를 검토한 뒤 당신의 결정을 즉시 e메일로 보내시오.’

파커 씨는 “땀이 비 오듯 줄줄 흘러내렸지만 학생들이 대학 입학서류를 준비하면서 들인 노력을 떠올리며 검토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03년 하버드대로 돌아온 파커 씨는 도로 밑에 설치된 지뢰 폭발로 인한 위기를 여러 차례 모면한 참전경험을 살려 폭탄으로 인한 ‘외상성 뇌 질환’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지난해 12월 다시 아프간 전장으로 향하기 전까지 심장조직 공학, 나노기술(NT), 외상성 뇌손상 분야 등으로 확대됐다. 군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도 지원받았다.

AP통신은 현재 10개월 된 딸을 둔 파커 교수가 가족을 위해 올해까지만 복무하고 군복을 벗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