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제대로, 포기 안하면 반드시 ‘터닝포인트’가 와요”
《“끝까지 놓지 않았던 건 ‘자신감’ 세 글자였어요. 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 60점을 받았을 때도, 내신 영어회화 과목에서 8등급이 나왔을 때도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자신감은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올해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이하 ‘용인외고’)를 졸업하고 2009학년도 대입 정시 전형에서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종헌 씨(19). 학교에서 그는 ‘전설’로 통한다. 특목고 입학 후 바로 찾아온 슬럼프로 한때 하위권에 속했지만 수능 전 과목에서 1등급을 받으며 원하는 대학, 바라던 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자기 암시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 성적표 보면 ‘망했다’ 생각뿐
“특목고에 입학한 것을 마치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생각했어요. 한순간에 목표를 잃었던 거죠.”
고1 때를 돌아보면 ‘놀았던’ 기억뿐이라는 이 씨. 원하던 학교에 입학했다는 안심은 목표상실로 이어졌다. ‘그래도 외고인데 여기서 꼴등해도 괜찮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란 안일한 생각으로 당시 이 씨는 공부의 끈을 놓았다.
정규수업시간엔 좀처럼 집중하지 않았다. 방과후 수업은 친구들을 따라 신청만 해놓고 결석하기 일쑤였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춤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제스처’라는 댄스 동아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공부도 동아리 활동도 의욕적이지 않았다. 이유 없이 태평했고,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는 아예 확인을 안 했어요. 공부를 했으면 성적결과를 보며 ‘영어가 많이 떨어졌구나, 암기과목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네’ 같은 분석을 할 수 있지만 그냥 시험을 봤으니 ‘망했다’라는 생각이 든 게 전부였죠.”
이때부터 이 씨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책상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친구가 10 페이지 읽을 동안 자신은 두세 페이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책을 덮는 속도를 맞추려다 보니 뒤로 갈수록 대충 읽고 넘겼다.
‘우수한 애들 사이에서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교 첫 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 60점, 1학년 1학기 내신 5.3등급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는 그저 남 얘기였다.
○ “야, 너 다시 봤다”
“다들 주요과목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라요. 비교과나 암기과목도 중요해요. 잘 할 수 있는 것에서 일단 자신감을 회복하면 주요 과목에서도 효과가 나타나거든요.”
1학년 겨울방학은 ‘터닝 포인트’였다. 우연히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주최하는 경제경시대회인 ‘전국고교생 경제 한마당’에 참가하기로 결심한 이 씨는 방학 동안 학원에서 경제수업을 들으며 대회를 준비했다. 결과는 전국 15등, 동상이었다. 용인외고에서 출전한 1학년 학생 중 1등이었다.
“친구들이 ‘너 공부 못하는 애 아니었냐?’ ‘다시 봤다’고 하더라고요. 비교과라도 열심히 하니까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학교 내신도, 모의고사도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감을 회복한 이 씨는 성적이 우수한 룸메이트의 공부법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1학년 때 허비했던 시간만큼 ‘공부 감’을 다시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자습실에 공부하러 가는 친구를 생각 없이 따라 갔다. 룸메이트가 공부하는 과목이나 교재를 보고 따라서 책을 폈다. 친구가 밤 새우며 공부하는 날엔 이 씨도 따라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더뎠다. 이 씨는 나만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느려도, 제대로 ‘이종헌’ 스타일로
“전 읽고 암기하는 데 남들에 비해 2, 3배 시간이 더 필요해요. 잘하는 과목이나 취약한 과목도 친구들과 다르기 때문에 저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했죠.”
이 씨는 느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독해가 느린 이 씨는 언어영역이 취약했다. 평소처럼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다 보면 뒤에 몇 페이지를 못 풀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 씨는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는 조급함 대신 문제 하나하나를 제대로 해결하겠단 마음을 먹었다. 특히 앞부분에 나오는 문제들은 더욱 철저하게 풀어 정답률을 높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문제를 푸는 ‘전체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닌가.
이틀에 모의고사 기출문제 1회분을 풀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고전문학은 따로 공부했다. EBS 수능특강 10주 완성, 인터넷 수능 고득점 200제, 파이널 등 거의 모든 시리즈를 다 풀었다. 1학년 때 4등급이던 언어영역은 수능 1등급으로 마무리했다. 수능에서도 마지막 지문 하나는 결국 풀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씨의 끈기는 국사과목에서도 드러났다. 3학년이 돼서야 서울대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한 이 씨는 뒤늦게 국사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아야 한다. 첫 모의고사에서 50점 만점에 30점. 6월 모의고사에서는 3등급이 나왔다. 친구들은 ‘이종헌이 30점 넘는다’ ‘못 넘는다’를 두고 내기를 걸기도 했다.
“남들보다 두세 배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30점을 넘기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목표를 위해 끝까지 공부를 놓을 수 없었죠.”
노력의 결과는 정직했다. 점수는 꾸준히 올랐다. 9월 모의고사에서 2등급, 수능 직전인 11월 모의고사 때는 1등급이 나왔다. 수능 때 결국 20문제를 모두 맞혔다.
과목에 따른 공부계획 짜기도 성적 향상의 원동력이었다.
중간, 기말고사 전 계획을 세울 때 이 씨는 과목을 ‘공부할 분량’과 ‘이수단위수’에 따라 분류했다. 한꺼번에 공부하기 어렵고 이수단위수가 많은 영어와 수학은 주중에 매일 한 단원씩 꾸준히 공부했다. 중국어, 생물 등 한두 단위 과목은 주말에 집중해서 마무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수능 사회탐구 영역은 3학년 때 배우는 과목과 일치시켜 근현대사와 사회문화, 경제를 선택했다. 내신과 수능을 한 번에 잡을 수 있었다.
이 씨는 “학기 중엔 수행평가 준비로, 방학 때는 비교과 활동을 하느라 평소 공부 페이스가 무너질 때가 있었지만 바로 다시 계획을 세워 마음을 잡았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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