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마이크·무대… 가수는 내 꿈… 내일 또 도전할 거예요
“오∼. 사랑 때문에 너 하나 때문에 나 모든 걸 다 버리고 기다리는데….”
반주 없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오디션 장에 퍼져나갔다. 심사를 보는 남자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한편에선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녹화 중인 카메라가 차르륵 소리를 내며 돌았다.
김민섭 군(한림연예예술고 뮤지컬과 1·사진)의 노래가 잠시 멈출 때마다 정적이 흘렀다. 김 군은 차례를 기다리는 나머지 29명의 초조한 눈길을 느꼈다.
“다른 노래 불러보세요.”
심사위원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군은 이날 가수 이영현의 ‘사랑해서…’로 시작해서 김건모의 ‘허수아비’,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까지 세 곡의 발라드를 불렀다.
결과는 불합격. 합격자에게만 온다는 개별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래도 김 군은 씩씩하게 말했다.
“떨어져도 좋은 경험 한 거라 생각해요. 기회는 계속 있으니까요.”
오히려 심사위원이 세 곡이나 시켜줘서 마음이 뿌듯했단다. 오디션 장에선 노래를 잘할수록 여러 곡을 부르게 하기 때문이다.
김 군은 지난해 3월 ‘재미 삼아 봤던’ 첫 오디션에서 참담한 일을 겪었다. 노래를 한 소절 부르자마자 심사위원이 “다음∼(지원자 나오세요)”하고 끊어버렸던 것. 이번 오디션을 앞두고는 그저 ‘많이 불러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기에 ‘내가 1년 만에 이렇게 성장했구나’ 싶어 가슴이 벅찼다.
중3 때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김 군은 “지금까지 본 오디션이라야 15회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중에는 보컬학원에서 소개해 준 이름 없는 기획사 오디션도 많았다. 하지만 김 군은 큰 기획사의 연습생(데뷔 전 노래, 춤 등을 배우는 가수 지망생)이 되고 싶다. “거대 기획사는 아무래도 ‘푸시(push·밀어주기)’를 많이 해주니까 가수로서 성공하기가 쉽다”는 게 김 군의 설명.
가수 지망생들이 몽매에도 그리는 3대 대형 기획사는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각각 그룹 빅뱅, 원더걸스, 동방신기를 배출해낸 곳이다. 학생들이 특목고나 명문대에 가려고 버둥거리는 것처럼 가수 지망생 사이에도 이들 기획사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JYP와 SM은 매 주말 공개 오디션을 보는데 매회 300∼400명이 몰릴 정도. 이 중 1차 오디션을 통과하는 지원자는 매회 한두 명뿐이다.
김 군은 지난해 노래연습을 위한 소위 ‘보컬학원’에 다녔다. 6개월 과정에 240만 원이었다. 만만찮은 금액이었지만 한 달로 치면 40만 원이니 사교육 학원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보컬학원에서 월, 수, 금요일마다 오후 8∼10시 수강하고 이후 학원에 혼자 남아 노래 연습을 하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했다.
처음엔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노래가 생각만큼 늘지 않고 슬럼프가 찾아올 때면 빈 연습실에서 혼자 소리 내어 울었다. 연습을 많이 해 목에서 쉰 소리가 나고 따끔거릴 때면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게 속상해서 또 울었다. 김 군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영 안 나올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올해는 연예인을 양성하는 전문학교인 한림연예예술고에 입학했다. 이 학교 뮤지컬과는 정규수업 시간에는 국민공통교과를 배우지만, 방과후에는 야간자율학습 대신 노래, 춤, 연기 등을 배운다. 김 군은 이밖에도 점심, 저녁마다 자투리 시간을 쪼개 발성연습을 한다. 주말에는 보컬학원에도 다닌다.
김 군에게는 공부하는 것보다 가수가 되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열심히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게 공부라면 노래 실력과 비주얼(외모), 운 등 모든 게 갖춰져야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수가 된다고 한들 ‘별 중의 별’이 되는 건 수백 수천 배 더 어렵다.
그러나 김 군의 꿈은 의외로 소박했다. 김 군은 “대중이 ‘김민섭’ 하면 ‘노래잘 하고, 뮤지컬도 잘하는 괜찮은 가수’라고 생각하는 날만 오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반짝하고 사라져버리는 가수가 너무 많잖아요. 저는 높게 빛나진 않더라도 길게 가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