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런던플랜… 佛 그랑파리… 日-中-印도 발벗고 나서
한적한 소도시에 자리 잡은 주택에서의 삶은 미국 사회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 민주당 여론조사 전문가 피터 하트 씨는 “시골과 소도시의 투표자들이 곧 미국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미국의 소도시 로망스(America's small-town romance)는 빛이 바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백악관에 도시정책실을 신설하고 중심도시와 주변부로 구성되는 대도시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도시권국가(메트로네이션)’ 전략을 수립했다.
면적은 전 국토의 12%에 불과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75%, 인구의 65%, 일자리의 68%를 차지하는 미국의 100대 도시권을 계획 관리해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고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복안이다. 전 세계가 ‘메가시티리전(MCR·광역경제권) 패권 다툼’을 벌이는데 미국만 한가로이 뒷짐을 지고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 ‘메가시티리전의 시대’가 온다
유엔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1950년 세계의 도시 인구는 7억3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9%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7년 도시 거주민이 64억 세계 인구의 절반, 2030년 6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지식기반 사회로의 전환 속에서 중국 인도 등 신흥국가의 성장이 도시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글로벌기업인 지멘스가 최근 펴낸 ‘메가시티의 도전’ 보고서는 도심에 인구가 집중하고 광역 통근이 일상화되는 광역경제권인 ‘메가시티 리전’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일본 도쿄(東京)의 인구는 1985∼1995년 0.05% 줄었지만 1995년부터 10년간은 0.66%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 뉴욕도 1995∼2005년 인구가 0.73% 늘었다. 세계 주요 40개 도시권이 세계 경제활동의 66%, 기술혁신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메가시티 리전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커졌다.
○ 세계는 대(大)수도 경쟁 중
1993년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세계화로 국가 간 국경이 무너진 유럽에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치열한 메가시티리전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은 런던 시장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2016년까지의 자체적인 성장관리 계획인 ‘런던플랜’을 수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와 프랑스 사막’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수도권 과밀에 대한 우려가 컸던 프랑스의 행보도 달라졌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4월 위대한 수도를 만들기 위한 ‘그랑파리(Grand Paris)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를 위해 대규모 첨단과학기술단지를 건설하고 수십 년간 투자에서 소외됐던 파리권의 광역 교통 인프라 확충에 10년간 350억 유로를 쏟아 붓기로 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2000년대 이후 각종 대도시 성장 억제 규제를 푼 일본은 도쿄 도심 재생 사업으로 미국과 영국 등의 선발 권역에 버금가는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 중국 등 후발주자도 가세
중국 인도 등 신흥국가도 대표 도시권 육성에 나섰다. 중국의 3대 광역경제권인 주장(珠江) 강 삼각주(광둥 성 일대)는 2020년까지 한국 전체의 경제 규모를 뛰어넘겠다고 공언했으며, 창장(長江) 강 삼각주(상하이 일대)는 주장 강 삼각주를 추월해 세계 6대 메갈로폴리스가 되겠다고 밝혔다. 최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징진탕(베이징-톈진-탕산)은 인구가 4400만 명이 넘어 한국과 비슷한 ‘몸집’이다.
중국은 이 3대 광역경제권을 포함해 칭다오(靑島)를 중심으로 한 산둥(山東) 반도 일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만을 마주보고 있는 해협 서안, 선양(瀋陽) 다롄(大連)을 중심으로 하는 랴오닝(遼寧) 성 중남부 등을 광역경제권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도는 중국 광역경제권 개발에 자극받아 범국가적 차원에서 나비 뭄바이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총 23조 원이 투입되는 나비 뭄바이는 여의도의 116배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계획도시로 인구 800만 명이 거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주변도시 협업으로 집중의 문제 해결”▼
‘글로벌 시티 리전’ 개념 제시한 앨런 스콧 美 UCLA 교수
모여 일할수록 경쟁에 유리… 전 국토 고른 발전 비현실적
그는 “정책 담당자가 지방 분산화(decentralized)를 추진할 수 있지만 이는 글로벌 경쟁의 해답이 될 수 없다”며 “핵심 도시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주변 도시들의 특성을 살릴 효율적인 도시 협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스콧 교수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광역경제권역의 중요성이 최근 세계 각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경제 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지식경제 또는 인지문화경제(CCE·Cognitive Culture Economy)로 바뀌면서 지식 근로자들이 대도시 권역에 모여 일하는 게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해졌다. 금융, 패션,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산업, 기술산업 등 인지문화경제의 50∼60%가 글로벌 메가시티리전에 존재하며 이러한 경향은 심화할 것이다.”
―한국은 경인권(서울 경기 인천) 등 특정지역 집중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물론 집적도가 높으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 국토를 고르게 발전시킨다는 정책은 비현실적인 접근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방 분산화를 통한 국토 균형발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행정 기능, 산업 시설, 학교 등을 전국 각지로 이동시킨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분산으로 인한 성장 잠재력의 저하 △행정과 교통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비효율 △집적이 필요한 지식산업에서의 부진을 겪으면서 최근 정책을 글로벌 메가시티리전 육성으로 선회하고 있다.”
―핵심 도시권으로의 집중을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방식으로 부작용을 줄이면서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나.
“메가시티리전으로의 집중을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핵심 지역의 성장이 전 국가적인 성장을 이끈다는 스필오버(spill over) 효과 관점에서 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서울을 지속적으로 경제, 제도의 중심지로 효율성 있게 육성하되 경인권 내의 주요 도시들에도 독특한 역할을 부여해 이를 종합적으로 조율하는 행정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통합 행정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여러 국가에서 권역 내의 도시들을 효율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구조(New forms of governance)를 실험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의 지원 아래 상하이(上海)와 주변 도시인 장쑤(江蘇) 성과 저장(浙江) 성을 아우르는 창장(長江) 강 삼각주를 통합 관리하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수립 중이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현진 미래전략연구소 차장
▽미래전략연구소 배극인 박용 김남국 문권모 한인재 하정민 신성미 기자
▽편집국 사회부 김상수 차장 남경현 조용휘 강정훈 정재락 기자
▽편집국 산업부 장강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