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핵실험 다음 날인 5월 26일부터 북한 전역에서 성공자축 군중대회가 잇달아 열렸다. 거기서 많은 연설이 있었는데 “핵 시험의 성공으로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혔다”는 내부 세뇌와 적(敵)들에 대한 비난이 난무했다. 최태복 노동당 비서는 평양대회에서 “미 제국주의자들과 일본 반동들, 그에 추종하는 남조선 보수세력의 악랄한 공화국(북한) 적대시 정책으로 나라 정세가 날로 긴장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은 ‘이명박 정권의 냉전적 대북정책이 핵실험을 불러일으켰다’는 소리는 차마 하지 못했다. 이 같은 논평을 내놓은 것은 오히려 남한의 민주당이었다. 한미에 책임 뒤집어씌우기를 상습적으로 하는 북한 노동당보다 남한 민주당이 한 수 더 뜬 거다.
한국 제1야당이 이런 억지를 부리던 5월 25일 세계 6대주(大洲) 각국은 북의 핵실험을 일제히 비판했다. 한반도에서 2만 km 떨어진 지구 정반대편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나라는 설혹 북이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피해가 없을 먼 곳에 있다. 철조망 건너편에 북이 있고, 머리맡에 핵이 놓여 있는 듯한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브라질은 항의 표시로 5월 말로 예정했던 평양 주재 대사관 공식 업무 개시를 미루었다.
좌파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도 ‘북한의 핵실험이 남한의 냉전적 정부 탓’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역시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국가 베트남도 오로지 북의 핵실험 자체를 문제 삼았다.
북에 속고 또 속은 DJ와 盧
북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0월에 1차 핵실험을 했다. 이는 1992년 남북 총리가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파기한 행위였다. 이 실험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간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북은 김대중 정부 때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조롱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DJ는 “북은 1994년에 핵을 포기했다”고 주장했고, 북이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가 북핵에 대해 국민 앞에서 했던 수많은 말들은 다 빗나갔다. 무지(無知)의 소치였건, 어떤 의도에 따른 것이었건 정말 책임을 통감해야 할 DJ다.
지난달의 2차 핵실험 위력은 1차 때의 최소 몇 배, 최대 수십 배로 추정된다. 이런 ‘진화’가 2006년 10월에서 2009년 5월 사이에 이루어졌다면 그 31개월 중 16개월은 노 정부 때였고, 15개월은 현 정부 때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1차 핵실험 딱 1년 뒤인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노 대통령은 핵에 대해 한마디도 않은 채 북에 ‘퍼주기 어음’만 잔뜩 끊어줬다. 그것이 10·4남북공동선언이다.
공동선언 전날인 2007년 10월 3일 북은 6자회담에서 ‘올해 말까지 3개 핵시설을 불능화(不能化)한다’는 ‘비핵화 2단계 행동계획’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시간 벌기를 위한 북의 사기(詐欺)였다. 결국 DJ-노무현으로 이어진 두 좌파정권은 북에 속고 또 속았다. 지금에 와서 모든 화살을 이명박 정권에 돌리고 있으니 역시 낯이 두껍다.
북은 그제 평양에서 유엔의 제재결의를 규탄하는 10만 군중대회를 열었다. 이날은 1999년 북의 도발로 제1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6·15남북공동선언을 한 지 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해전을 지휘했던 박정성 전 2함대사령관은 “선제 사격을 절대 금지한 DJ의 작전 지침 때문에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10년 전을 회고했다. 반대편에서 DJ는 MB 정부가 6·15선언을 이행하지 않아 안보위기가 심화됐다며 정권 타도까지 선동하고 있다.
북은 6·15선언 2년 뒤인 2002년 6월 북은 또다시 연평해전을 도발했고,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했다. ‘이제 전쟁은 없다’는 DJ 정권의 세뇌 속에서 안보태세가 풀어진 탓이 컸다.
국론 분열 선동, 김정일이 웃는다
지금 북은 세계를 상대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미사일 게임을 벌이고 있다. 4월의 로켓 발사 때만 해도 제재 결의에 반대했던 중국과 러시아까지 2차 핵실험에 분노하며 강화된 제재에 동의했다. 그러자 북은 DJ 정부 말기인 2002년에 부인했던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 개발까지 공개하고 나왔다. 2002년 당시 DJ 정부 일부 인사와 좌파세력은 ‘미국이 북을 압박하기 위해 HEU 의혹을 만들어냈다’며 북을 비호했다.
DJ와 그 추종세력은 북이 이미 다 깨버린 6·15선언 하나에 매달려 ‘이것만 살리면 남북관계는 만사형통’이란 식으로 국민을 오도하며 적전(敵前) 국론 분열을 꾀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러는가. DJ를 위해 나라가 있고, 국민이 있단 말인가.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