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소망하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후 가장 빈번히 받은 질문이다. 나름의 해답으로 교육의 선진화와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투자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이 필요할지에 관해 거론해 보고자 한다.
국토가 비좁고 부존자원도 열악한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응용과학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오늘날 산업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이 와중에 순수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됐고, 이는 한국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기에는 미흡한 현실을 초래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이후 초토화된 국가경제를 일으켜야만 한다는 절박한 사명의식에서 비롯된 불가피했던 선택의 결과로 보인다.
한시라도 빨리 나라를 부흥시키는 데 국가의 총력을 집중해 빠른 해결책, 즉각적 결과, 약속된 보상, 이익 보장 등의 명제가 국가의 슬로건이 됐고 정부의 투자정책에 잣대 역할을 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즉각적 이익이나 성과를 보장하기 어려운 기초과학 분야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하기를 기대하는 일은 당연히 무리였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기초과학이 관심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알아가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소식을 접할 때 약간은 시기상조의 바람이 아닌가 싶었지만 이는 늦게 출발한 이들의 조급함에서 비롯된, 그래서 더욱 간절한 염원이 아닐까 한다. 노벨상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숙하고 순수기초과학의 기반이 확립됐을 때 자연적으로 얻는 부산물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선진국에서 엿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기초과학의 가치에 대한 높은 인식과 지속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 오랜 전통이다.
기초과학이 성공리에 자리매김을 하려면 무엇보다 우수한 기초과학자를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외부제한 요소로부터 자유로운 연구 공간을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기초과학 분야를 이해하고 연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독립적 연구조직이 필요하다. 특히 기관의 독립성은 기관의 안정성, 국제기관으로서의 유연성, 그리고 연구환경의 자율성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은 언제라도 상위기관이나 다른 외부 영향에 따라 다른 원칙과 비전을 표방하는 조직으로 변경될 수 있다. 장기적 안목이 필수적인 기초과학 기관과 연구활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지난 20∼30년간 한국은 응용과학에 힘입어 양적인 국가성장을 이뤘지만 기초과학의 토대가 필수적인 질적 성장 측면에서 아직은 부진하다. 전쟁의 잿더미로 뒤덮였던 나라를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한국인의 강인한 근성에 필자는 경외를 표한다. 한국의 산업기반은 과학적 혁신 없이 결코 지탱할 수 없다. 이는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적절한 투자를 통해 이룰 수 있음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원동력이 되었던 불굴의 의지와 끈기로 조급함 때문에 미처 챙기지 못했던 국가의 기반 정립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넓고 높게 보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함으로써 국가의 미래를 재설계해야 할 때이다. 이 점이 다른 발전 국면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더 나아가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의 꿈을 실현할 비결이라고 확신한다.
조지 스무트 이화여대 석좌교수·200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