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허재에게 술 따르는 이명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3남 정운은 농구 마니아다. 정운은 이명훈(235cm·왼쪽)의 미국 진출을 아버지에게 조르기도 했다. 이명훈이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 환영 행사장에서 당시 선수로 출전한 허재 KCC 감독에게 술을 따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정일 “농구하면 똑똑해져”… 정운, NBA 보러 파리行
자유투→벌넣기, 리바운드→판공잡기… 생경한 용어 많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67)의 후계자로 지목된 3남 김정운(26). 그는 학창시절 농구를 즐겼다.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1990년대 후반 미국프로농구 시범경기를 보기 위해 프랑스 파리까지 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농구 만화를 즐겨 봤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런 배경에는 농구광인 아버지의 영향이 커 보인다. 김 위원장은 평소 미국프로농구를 위성중계로 시청하고 ‘폭풍’ ‘태풍’ 등 농구 팀에 이름을 직접 지어주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1980년대 말 “농구는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운동이니 적극 육성하라”고 주문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저변이 약했던 농구를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김 위원장은 1996년에 ‘사회적으로 농구하는 분위기를 세우라’는 취지의 친필 교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후 북한에선 ‘동네 농구’가 유행병처럼 번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99년 남북 통일농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린 뒤 2003년에는 평양 유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을 기념하는 농구대회가 열렸다. 북한에서 뛰던 키 235cm의 거인 이명훈과 ‘북한의 마이클 조든’이라는 박천종(186cm)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2000년 방북했던 매들린 울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농구 황제’ 마이클 조든의 사인이 새겨진 농구공을 선물하기도 했다.
사실 북한의 농구 열기는 남북 분단 이전에도 뜨거웠다. 프로농구 삼성 조승연 단장의 선대인 조득준 선생은 평양 출신으로 1940년 전후 국내 최고의 선수로 일본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던 조 단장은 “일제강점기엔 서울보다 평양 농구가 더 강했다고 들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 절반은 북한 출신이었다”고 말했다.
오랜 단절과 고립으로 북한의 농구 용어와 규칙은 생경하다. 자유투는 ‘벌 넣기’, 덩크슛은 ‘꽂아 넣기’, 리바운드는 ‘판공 잡기’, 어시스트는 ‘득점 연락’ 등으로 부른다. 기존 3점 라인(6.25m)보다 먼 6.70m 바깥에서 슛을 넣으면 4점으로 인정하고 경기 종료 2초를 남긴 이후에 나오는 득점에는 8점을 준다. 이른바 북한의 ‘자주적인 규칙’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농구 선수 출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시절 농구단 창단을 주도한 뒤 단장을 맡아 선수 스카우트에 관여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때는 농구장에서 시구를 한 적도 있다. 묘하게도 핵문제로 팽팽한 긴장관계를 보이고 있는 남북한과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농구로도 얽혀 있는 셈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