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달 뛰어 논 약병아리 맛
육질은 쫄깃, 뼈 국물은 고소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세라/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지옥 물에 목욕재개 하고나니/골수 녹아내려 녹작지근한 몸뚱아리//인삼 하나 끌어안고/볼썽사납게 다리 꼬고 누워/누드쇼는 하지만/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해탈시켜주길’(권오범의 ‘삼계탕’ 부분)
어릴 적, 한겨울 우리 집 아랫목은 늘 병아리들 차지였다. 식구들은 윗목에서 생활했다. 형제들은 “삐약∼ 삐약∼” 들끓는 소리에 눈을 떴다가, 그 소리가 잠잠해지면 설핏 잠이 들었다. 병아리는 구물구물 1000마리가 넘었다. 방바닥은 잦은 군불로 윗목까지 펄펄 끓었다.
따뜻한 3월이 되면 병아리 등엔 날개가 삐죽삐죽 돋았다. 우는 소리도 제법 우렁차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놈들은 더 이상 시들시들 졸다가 죽지 않았다. 약한 것들은 이미 죽고, 700∼800마리 정도 남았다.
한낮엔 봄볕마당에 풀어놓아야 했다. 둘레엔 빙 둘러 임시 가림막을 쳤다. 병아리들은 천방지축 마당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울뚝불뚝 힘이 넘쳤다. 수평아리들은 벌써부터 서로 깃을 세우고 부리로 쪼아대며 싸웠다. 식구들은 하늘의 솔개가 이 어린 것들을 채가지 않을까 간을 졸였다.
4월이면 그것들은 시장에서 약병아리로 팔려나갔다. 속이 짠했다. 구물구물 크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어머니가 몇 마리를 잡아 옻이나 엄나무 백숙을 해줘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겨울밤 잠을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 그 녀석들에게 쌀겨와 싸라기 모이를 주던 일이 떠올랐다.
요즘 병아리는 부화기계에서 ‘생산’된다. 어미 닭의 따뜻한 품은 전설로 남았다. 생산된 병아리도 암컷만 살아남는다. 수평아리들은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한다.
살아난 암평아리라고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우선 발톱이 뽑힌다. 그리고 뾰족한 부리도 뭉툭하게 잘린다. 철망으로 된 아파트양계장에 맞추는 것이다. 발톱이 있으면 철망에 걸린다. 철망의 병아리들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결국 견디다 못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운다. 하지만 뭉툭한 부리는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허공에 내지르는 주먹질이나 같다.
병아리들은 처음 2주 동안 24시간 내내 인공조명 아래 산다. 그러면서 인공사료를 먹고 또 먹는다. 항생제도 먹고 성장촉진제도 먹는다. 살이 피둥피둥 찐빵처럼 찐다.
삼계탕(蔘鷄湯·Ginseng Chicken Soup)은 결국 무슨 닭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값비싼 산삼을 넣어도, 닭이 엉터리라면 그건 제대로 된 삼계탕이 아니다. 옻 엄나무 영지버섯 등 별별 것을 다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삼계탕의 닭은 보통 500g 정도 되는 영계를 쓴다. 머리와 꼬리 내장을 빼면 한 350g 정도나 될까? 그 빈 배 속에 밤, 인삼, 대추, 마늘, 생강, 황기, 오가피, 은행, 불린 찹쌀 따위를 넣고 푹 곤다.
옛날 시골 약병아리는 겨우내 서너 달은 키워야 500g 정도가 됐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일부 닭 공장에선 빠르면 20일 만에도 뚝딱 만들어낸다. 한 달이면 시간이 철철 남아돈다. 이런 닭을 넣은 삼계탕은 15분 이상 끓이면 흐물흐물 다 녹아버린다. 고기도 퍽퍽하고, 마치 푸석한 두부를 먹는 것 같다. 국물은 깊은 맛이 없고 느끼하다. 뼛속은 텅 비어 ‘골즙’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뼈는 과자처럼 바스라진다.
좋은 약병아리는 적어도 센 불에 1시간 이상 끓여야 한다. 그래도 육질이 쫄깃하다.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며, 뼈즙이 우러나와 고소하다. 뼈를 분질러 보면 속에 새카만 골수가 꽉 차있다. 수평아리(웅추·雄雛)는 기름이 적어, 암평아리보다 육질이 맛있다. 서울 중구 서소문 고려삼계탕(02-752-9376)이 수평아리만 고집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보통 오래된 삼계탕전문점에선 생산 농가와 직거래를 하는 곳이 많다.
정태한 마령생명영농법인 대표(53)는 수십 년 동안 토종닭에 미친 사람이다. 전국 곳곳을 쏘다니며 재래토종닭 180마리(15개 무리)를 수집한 다음, 그것들을 3년 동안 상호 교배시켜 키워냈다. 근친교배는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전북 진안 마령농장 53만 평에 7000여 마리의 조선 닭을 옛날 촌닭처럼 키운다. 항생제나 방부제 그딴 것들은 일절 안 쓴다. 한약재 쌀겨 참숯 국산콩 옥수수 풀 조개껍데기 싸라기 등만 먹인다.
최근 농협중앙회 축산사료연구소 잔류검사 결과 항생제 방부제 성장촉진제 등 6가지가 모두 제로다. 깨끗하다. 조사원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되레 깜짝 놀랐다. 그는 지난해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에 마령토종삼계탕 향계원(02-3445-9903)을 냈다.
“난 삼계탕에 120일 된 우리 조선 닭만 쓴다. 이것은 적어도 센 불에 1시간 10분은 푹 고아야 한다. 조선 닭은 발과 발목이 모두 녹둣빛이다. 등과 머리가 이루는 각이 90도로 곧다. 벼슬도 한여름 맨드라미처럼 선명하고 팥죽처럼 짙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보기만 해도 예쁘다. 이것들을 야생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적어도 반쯤은 방목으로 키운다. 공장에서 나온 닭들은 항생제 덩어리다. 그걸 아무것도 모른 채 먹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 아프다.”
‘수탉 한번 큰 울음에 천하가 밝는구나.’ 중국 당나라 시인 이하(790∼816)의 찬탄이다. 어디 천하만 밝는가? 온갖 귀신들도 스르르 꽁무니를 뺀다. 수탉은 당당하다. 닭 벼슬은 선비들의 출세를 상징한다. 날카로운 닭 발톱은 무인들의 용맹을 뜻한다. 요즘엔 수탉 보기가 힘들다. 어쩌다 보는 수탉도 요즘 남자들처럼 힘이 없다.
삼계탕은 무더운 복날 음식이다. 허기지고 힘이 없을 때 먹는 복달임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먹고 힘을 추스른다. 남자들은 수평아리의 이루지 못한 꿈을 생각한다. 아득히 먼 옛날, 창공을 훨훨 날았던 ‘지워진 기억’을 되살려낸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