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재개발, 제도 개선해 투명성 높일 것”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서울 남산은 각별한 장소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남산을 찾는다.
동아일보와의 취임 3주년 인터뷰도 14일 오후 남산에서 이뤄졌다.
말솜씨가 있으면서도 말을 아끼는 편인 오 시장은 이날 국립극장에서 남산N타워까지 1.5km를 1시간 동안 기자와 함께 걸으면서 그동안의 실적, 임기 중 추진할 정책, 향후 정치 계획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
임기중 뉴타운 추가지정은 절대 없을 것
디자인 문화 확산-노점상 문제 해결 보람
―남산을 자주 찾는 이유가 있나.
“매일 저녁 약속이 있는데 아쉽게도 내가 술을 잘 못한다. 그래서 식사 후 2차 대신 남산을 같이 걷자고 한다. 혼자도 자주 온다. 평소 좋아하지만 운동할 시간이 부족해 남산에 와서 스트레스를 푼다. 숲 속을 거닐면 생각이 맑아지고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도 있다.”
―무능 공무원 퇴출제로 공무원 사회에 충격을 줬다. 시장을 무서워하는 공무원이 많은 것 같다.
“열심히 일하라고 채찍질을 한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게으른 직원들 군기 잡으려고 시작한 것인데 이제는 서로 경쟁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만족스럽다.시정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시장이 무서워 자치구로 도망간 사람도 있다던데….
“4년 동안 성공한 인사 시스템인 만큼 구청에서도 이 인사원칙을 적용할 것이다. 처음에 너무 물렁하게 보는 것 같아 냉정하고 독하게 대했는데 그 인상을 바꾸지 못했다. 이제는 부드러워져야죠(웃음).”
그러면서 오 시장은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운녹지축 사업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하다 순직한 고(故) 김창원 SH공사 세운상가 보상팀장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난다. 굉장히 어려운 사업이었는데 정말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다. 보상 관련 일로 만난 분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지난달 녹지광장 준공식 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남은 임기 1년 내에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을 묻자 오 시장은 재개발·뉴타운 문제를 꺼냈다.
“그동안 재개발·뉴타운 사업은 세입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주나 건설사의 이익을 적절히 보장해주는 쪽으로 이뤄져온 게 사실이다. 이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때가 됐다. 10일 서울시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위원회가 40년 묵은 재개발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는데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재개발 사업의 틀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가.
“현재는 구역 지정 단계부터 정비업체, 철거업체, 건설사 등이 개입한다. 건설사와 조합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불법·탈법이 난무하다 보니 분양가는 올라가고 돈이 없는 원주민이나 세입자가 쫓겨나는 현상이 생긴다. 앞으로는 시나 구, SH공사 등 공공기관이 정비사업 전반을 관리할 것이다. 주택국이 현행 정비사업 과정 어디에서 돈이 부풀려지고, 어디에서 돈이 새는지 정밀 조사하고 있다. 7월에 조사 결과와 함께 서울시의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내놓겠다.”
―건설사나 조합들이 반발할 텐데….
“도시개발사업은 원래 공공 부문의 역할이다. 공무원들이 그간 손을 대지 않았던 것뿐이다. 철저히 반성한다. 공공 부문이 개입해 재개발 사업이 투명해지면 109m²(약 33평)대 아파트 기준으로 분양가를 1억 이상 내릴 수 있다. 전쟁한다는 각오로 끝까지 관철시키겠다.”
―정말 1억 원 이상 분양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조합설립을 도와주는 정비업체가 영세한 곳이 많다 보니 건설사가 미리 돈을 대준다. 조합에도 뒷돈을 주곤 하는데 이게 사업비에 포함돼 분양가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 조합장이 돈 받아 구속됐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지 않나. 소송이 걸리지 않은 재개발 사업구역을 찾기 힘들 정도다. 소송이 걸리면 공기(工期)가 길어지고 금융비용이 늘어난다. 사업 전반을 투명하게 관리하면 분양가를 확 줄일 수 있다.”
―4차 뉴타운 지정은 어떻게 되나.
“이번 임기 내에 추가 뉴타운 지정은 절대 없다. 뉴타운이 좋은 사업이지만 (전임 시장 때) 한꺼번에 많이 지정돼 후유증이 남아 있다. 다음 임기 중에나 지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시장은 지난해부터 시장 연임 의사를 밝혀왔다. 민선 시대 이후 서울시장 재선 의사를 밝힌 건 그가 처음이다. 왜 시장을 한 번 더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공무원 인사개혁처럼 새로 시작한 정책을 제대로 이어줄 사람이 있다면 굳이 내가 안 해도 된다. 그런데 그게 확신이 없다. 최근 당내에서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을 비판하신 분이 있다. 디자인보다는 디지털이 맞다는 것이다. 그분이 시장이 되면 지난 4년간 해온 디자인은 죽는다. 문화 시정, 창의 시정, 주택 정책 다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에 경쟁자가 많은데 경선 통과할 자신 있나.
“그분들은 정치인이지만 서울시장은 일하는 자리다. 특히 현직 시장은 일로 승부해야 한다. 시민의 평가가 중요하지 상대 후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만약 나보다 일 잘하는 사람이 나오면 당장 양보하겠다.”
―전임인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이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다. 오 시장은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직원들이 일을 너무 잘 해서 그렇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사업만 해도 그렇다. 노점상 문제를 해결한 것은 청계천 못지않은 대단한 일이다. 생존권이 걸린 그 어려운 일을 대화를 통해 큰 충돌이나 사고 없이 마무리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서울광장 개방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중요한 건 원칙이다. 내가 원칙을 깨뜨리면 후임 시장이 매우 힘들어진다. 인기를 의식해 여기선 이렇게, 저기선 저렇게 말해선 안 된다. 사용 허가를 놓고 정부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는데 나는 원칙대로 했다. 돌이켜 봐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오세훈 서울시장:
△1961년 서울 출생
△1983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99년 고려대 법학 박사
△1984년 사법시험 26회
△1996∼1997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제16대 국회의원(한나라당)
△2004∼2006년 5월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
△2006년 7월 제33대 서울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