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라… 정상보다 살가운 물길이 있다
“꼭 정상에 올라야 제 맛은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그렇죠”라는 맞장구가 나왔다. 6일 충북 단양군 월악산국립공원의 제비봉(721m) 탐방로. 제비봉은 충주호 쪽에서 보면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 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오전 10시 반부터 제비봉 등정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정오를 훌쩍 넘겨서야 입구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휴일 교통체증에 발목이 잡혔다. 정상에서 먹으려던 도시락은 탐방로 입구에서 뜯었다. 늦은 산행 때문에 정상 도전은 포기해야 했다. 6월을 맞은 하늘과 산은 푸르렀지만 햇살은 뜨거웠다. 무더위 속 무리한 산행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정상의 의미는 크다. 정상에 섰을 때의 성취감은 축구의 결승골과 마찬가지다. 이날은 정상을 향한 산행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목표가 ‘정상 정복’이 아닌 ‘웰빙 트레킹’이었으니 정상 표석을 못 보더라도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다.
짧은 산행도 쉽지는 않았다. 등산로가 잘 닦이고 계단이 놓여 있었지만 경사는 만만치 않았다. 때마침 구름을 몰아낸 태양은 높은 곳에서 산 구석구석을 비췄다. 10분 정도 경사를 오르자 스무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중턱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충주호 물길은 봉우리 사이를 굽이굽이 흘렀다.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형상이 큰 거북 같아 구담봉(龜潭峯)이라 불리는 봉우리는 물길 옆에 서 있었다.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죽순처럼 솟은 모양의 옥순봉(玉筍峯)도 한 폭의 병풍을 연상케 했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단양팔경에 속하는 명승지다. 말목산과 금수산도 호수에 장대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봉우리 모두 푸른 색깔로 빛났다.
등산객들은 수려한 경치에 탄성을 질렀다. 10분 남짓한 산행 후 볼 수 있는 풍경으로는 최고였다. 정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도 장관이었겠지만 이토록 짧은 시간에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본 것 역시 큰 선물이었다.
가파른 바윗길을 다시 오르니 이내 깎은 듯한 절벽이 나왔다. 숲속 길과 계단을 번갈아 걸으며 주위를 감상했다. 여름의 신록과 푸른 물길은 짧은 산행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상에 오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탓에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지만 멋진 봉우리와 충주호의 푸른 물빛은 산중턱에서 봐도 빛났다.
단양=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동아닷컴 편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