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기업들은 입소문 마케팅을 위해 오피니언 리더를 집중 공략한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며 발언권이 강한 인사들에게 공짜로 제품을 주고 해외여행도 시켜준다. 하지만 이는 '구전(口傳) 효과'를 제대로 유발하지 못하는 매우 비효율적 투자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과 남캘리포니아의대의 연구팀이 의사들 사이에서 신약에 대한 입소문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분석한 결과 오피니언 리더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스타급 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동료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은 소위 '사회관계형(sociometric) 리더'가 입소문을 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많은 기업들이 오피니언 리더 공략에 엉뚱한 자원을 낭비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연구 결과는 와튼경영대학원의 온라인 경영 웹진 '날리지앳와튼'에 실렸으며 동아비즈니스리뷰 36호(7월 1일자)에 전문 번역돼 있다.
●입소문 주역은 '사회관계형 리더'
연구팀은 한 제약업체의 후원을 받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LA의 개업 의사 사이에서 신약에 대한 입소문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파악하기 위해 방대한 인맥 지도를 그렸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소문을 전파하는 사람, 소문을 들은 사람 등을 추적했다. 그 결과, 대도시 의사들은 동양인 그룹과 백인 그룹으로 구분됐는데 이 둘을 연결하는 한 인물이 발견됐다. 연구팀이 '의사 184호'라고 부른 이 인물은 입소문의 확산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 184호'는 언론에 많이 알려진 인물도, 의사 단체의 지도자도 아니었다. 연구를 의뢰한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은 이 의사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 의사 스스로도 자신이 오피니언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구를 주도한 반 덴 벌트 와튼경영대학원 교수는 "의사 184호는 한마디로 타인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인물이었다"며 "동료 의사의 신망이 두터웠지만 남의 이목을 즐기는 스타급 의사는 전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사 184호'와 같은 사회관계형 리더는 치료 해결책을 찾거나,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반드시 동료 의사들과 협력한다. 그리고 다른 의사가 어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들은 신약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오피니언 리더 그룹보다 훨씬 빨랐다. 특히 동료 의사들에게 신약을 권유하는 비율은 오피니언 리더를 압도했다. 연구팀은 "오피니언 리더들은 스스로를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며 "그들은 남들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남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고 분석했다.
●입소문 마케팅 대상 전면 재검토해야
연구에 참여한 라구람 이옌가르 와튼 경영대학원 교수는 "대부분 영업 담당자들이 입소문 마케팅 대상을 잘못 파악해왔다"고 비판했다. 실제 마케터나 시장 조사 회사들은 주로 소비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은 오피니언 리더인가?"라고 질문을 한 후에 응답자의 나이, 소득, 학력, 지명도 등을 감안해 오피니언 리더를 선정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선정된 오피니언 리더들은 마케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특정 질환을 치료할 때 어떤 동료에게 자문을 구하는가?"라는 형태의 질문을 던져서 추천을 많이 받은 인물을 적극 공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연구를 의뢰한 제약 회사는 마케팅 전략을 수정했다. 이 업체는 대도시의 영업 인력을 재배치하고 명망가보다는 의사 사회 내부에서 조용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관계형 리더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또 이런 전략이 실제 판매 증진 효과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연구 대상이 됐던 3개 대도시 가운데 사회관계형 리더 공략에 주력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성과 차이를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도 의뢰했다.
한인재기자 epici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