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 카이사르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고 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허정무 축구 대표팀 감독에 대해 ‘허정무는 예선용에 불과하고 본선은 외국인 지도자가 맡을 것’이라는 일부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세력이 바로 그 격이다.
축구 팬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보여준 지도력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4강 신화를 만든 추억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떠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호주의 16강, 유로(유럽축구선수권) 2008에서 러시아를 4강에 올려놓는 등 아직도 매직을 발휘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등 외국인 감독이 줄을 이었던 것도 그 추억의 힘이었다.
허 감독이 지난해 말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을 때부터 일부에서 외국인 사령탑에 대한 미련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허 감독이 월드컵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을 14연속 무패(7승 7무)로 통과해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는데도 그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카이사르의 자기중심적 인간론이 자리 잡고 있다.
2000년 11월 이후 7년 만에 대표팀 사령탑에 다시 오른 허 감독은 처음에는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허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부드럽게 바꿔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비롯해 기성용(FC 서울) 등 대표팀 선수들은 허 감독에게 절대 신뢰를 보냈다. 그 결과 대표팀은 하나가 됐고 20년 만의 무패 본선 진출을 이뤘다.
히딩크 감독을 제외하면 다른 외국 감독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작은 장군’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6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제 외국인 감독의 환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언제까지 마법을 부려줄 외국인 사령탑만 기다릴 것인가. 허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자. 그래야 ‘한국판 히딩크’도 나올 수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