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저조 예상 기관장
구명로비 움직임도 포착
실적이 나쁜 공공기관장 4명에 대한 해임 건의, 17명 경고라는 이번 결정에는 집권 중반기를 앞두고 공공부문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단순히 ‘평가를 위한 평가’로 끝내지 않고 성과가 부진한 기관장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당초의 방침을 관철함으로써 공공기관에도 민간기업처럼 최고경영자(CEO)의 책임경영체제가 확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84년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제도가 도입된 이후 25년간 기관장이 해임된 것은 2001년 박문수 당시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이 유일했다. 그는 경영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해임 건의가 이뤄지자 자진 사퇴했다.
이처럼 공공기관장의 해임이 거의 없었던 건 역대 정권이 공공기관 개혁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헛구호’에 그쳤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현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기관장 개인에 대한 평가를 실시해 결과를 공개한 것도 기관장의 경영책임을 묻는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하면 과거 정권의 실패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관장의 경영 실패의 책임을 철저히 따지고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방만 경영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해임 건의 대상에 오른 4명의 기관장 가운데 한국소비자원 박명희 원장을 제외한 3명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사람”이라며 “이번 조치를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6차례에 걸쳐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일부 공공기관의 눈치 보기, 늑장 이행 때문에 국민의 개혁 체감도는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 신상필벌의 원칙을 확실히 세운 만큼 공공기관들이 경영효율화 작업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평가결과가 공개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성적이 나쁠 것으로 예상되는 기관장이 정치권에 구명(救命) 로비를 시도하는 등 잡음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정권 교체 이후 각 공공기관의 고위직에 임명된 정치권 출신 인사들은 기관장 평가결과를 사전에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한 공공기관의 임원은 “기관장으로부터 평가결과를 사전에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고 캠프에서 같이 일했던 정치권의 선후배들에게 밤낮없이 전화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