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바이오의약품 개발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생명공학벤처기업 바이로메드의 김선영 대표. 이르면 2013년 첫 국산 바이오의약품을 세계 시장에 출시하는 게 요즘 그의 목표다. 박영대 기자
서울大 벤처로 출발해 한우물
새 심혈관치료제 등 프로젝트
현재 韓-美-中서 임상시험중
2013년쯤 첫 국산바이오약 기대
약 83조 원과 66조 원. 18일 현재(한국 시간) 삼성전자와 미국 생명공학벤처기업 암젠의 시가총액이다. 삼성전자라면 외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암젠은 그다지 유명한 기업이 아니다. 이를 감안하면 암젠의 시가총액은 놀라운 금액이다.
“그뿐인가요. 직원 수는 암젠이 삼성전자의 7분의 1 수준이에요. 삼성전자의 제품은 수백 가지지만 암젠의 제품은 10개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암젠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훌쩍 넘어선 때도 있었죠. 바로 이게 바이오의 매력입니다.”
8일 낮 서울대 생명과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김선영 바이로메드 대표(54·서울대 교수)는 생명공학의 가장 큰 매력으로 ‘독점성’을 꼽았다. 휴대전화 하나엔 수많은 특허가 걸려 있지만 바이오 분야에선 평균 3개의 특허가 1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 난관을 기회로
“대표적인 예가 빈혈치료제 이포젠(EPO)이에요. 적혈구 수를 늘려주는 호르몬입니다. 암젠은 이 제품 하나로 연간 약 7조 원의 매출을 올립니다. EPO 물질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익률이 높고 시장 독점력이 크죠.”
하지만 이런 ‘대박’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른 산업 분야보다 훨씬 길다. 전문가들은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 보통 15년을 잡는다. 바로 이 점이 바이오업체가 직면하는 최대 난관으로 꼽힌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100% 난관만은 아니에요. 빠르게 돌아가는 회사는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맞을 위험도 크죠. 우린 처음부터 장기전을 예상했어요. 제품 개발 기간이 긴 만큼 시장 변화를 분석할 수 있는 학습 기간도 길죠. 그만큼 치밀한 준비를 할 수 있어요.”
바이로메드는 현재 자체 기술로 개발한 당뇨합병증 치료제와 심혈관 치료제, 항암제, 혈소판감소증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한국과 미국, 중국 등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는 모두 최근 각광받는 바이오의약품 후보물질이다.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드는 기존 의약품과 달리 바이오의약품은 생체물질인 유전자나 단백질, 세포를 이용해 만든다. 병의 원인물질만을 콕 집어 치료하기 때문에 온몸에 영향을 주는 화학합성의약품보다 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최근 바이오의약품 핵심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합병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 첫 국산 바이오의약품 출시 목표
“우리가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최초의 국산 바이오의약품이 세계 시장에 나오게 되는 겁니다. 목표는 2013∼2015년 출시죠.”
가장 진행 속도가 빠른 건 심혈관 및 당뇨합병증 치료제. 내년 말까지 임상시험 결과가 좋으면 큰 제약회사로 기술을 이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예상이다. 그가 “2010년이 회사 성장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이로메드는 세계 시장을 메이저와 마이너의 둘로 구분해서 본다. 메이저 시장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이곳의 임상시험은 직접 나서서 진행한다. 나머지 시장은 지역마다 개별적으로 파트너십을 맺어 기술을 이전한다. 여기서 얻은 수입을 연구에 투자해 또 다른 신약을 계속해서 개발하는 전략이다.
바이로메드 설립은 1996년. 국내 최초의 학내(서울대) 벤처기업인 바이로메디카퍼시픽이 바이로메드의 전신이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유전자의약품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죠. 있는 건 기술과 열정 딱 두 가지였어요. 주위에서도 대학교수가 시장을 알겠느냐며 대부분 말리더군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제품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기술의 우수성을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특허나 논문을 확보하는 데 특히 집중했다.
연구만 하던 과학자라 경영 일선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과학자가 단순히 실험만 하는 건 아닙니다. 실험을 하기 위해선 방법을 고안하고, 재료를 사고, 결과도 해석하고, 논문 작성이나 다음 실험 일정도 짜야 하죠. 연구비와 인력 문제도 있어요. 소규모 회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과학자라고 해서 경영이 서툴 거라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는 얘기다. 김 대표는 “기초과학은 논리적 사고과정을 배우는 학문”이라며 “인사나 재무, 기획 등 경영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데 과학적 마인드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타인에게 배운다
1991년 김 대표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을 만났다. 과학자와 소설가의 만남. 흥미롭긴 하지만 선뜻 이해가 되진 않는다. 만남은 김 대표가 박 선생의 소설 ‘토지’의 한 인물에 대해 의문이 있다며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띄워서 이뤄졌다.
“주인공 서희네에서 집사처럼 일하던 용이의 아내로 ‘임이네’란 인물이 나와요. 민초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죠. 어떻게 그런 캐릭터를 설정했는지 무척 궁금했어요.” 임이네는 그저 상상 속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조금은 수줍어하던 박경리 선생과의 첫 만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김 대표는 스스로를 “타인의 업적과 인간성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의 일이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이 연구나 경영을 이끄는 추진동력이 돼요. 우리가 만든 약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바이오의약품인 인슐린이 당뇨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것처럼 말이죠.”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김선영 대표 프로필
―1978년 서울대 미생물학과 졸업
―1982년 美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사
―1984년 미국 하버드대 분자유전학(석사)
―1986년 영국 옥스퍼드대(박사)
―1990∼1992년 하버드대 의대 조교수
―2006∼2008년 한국유전자치료학회 회장
―1998년∼현재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진
메디신’ 편집위원
―1992년∼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05년∼현재 바이로메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