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통계의 궤변, 모르면 당한다
다음 달부터 고용기간 2년이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된다. 과연 10일 후에 비정규직 해고 대란이 일어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많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 기업이 비정규직 전원 또는 절반 이상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 조사 결과를 두고 여야의 해석이 정반대로 갈라진다.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 해고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을 개정하든지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대란 가능성이 과장되었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저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데이터가 있는 한 데이터 조작도 항상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은 정보와 통계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이 책은 정보의 정글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통계 지침서라고 할 만하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통계가 나온다. 이 중에는 정확한 통계도 있을 테지만 조작된 통계, 엉터리 통계도 있다. 통계를 정확하게 판독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통계를 판독하고 이해하고 진위를 가리는 능력이야말로 정보화시대의 힘이요 능력이다.
조작된 가짜 통계일수록 진짜처럼 보이도록 위장한다. 그중의 하나가 ‘수치는 정교하다’는 환상이다. 세무서에 제출한 소득신고서에 ‘200만 원’이라고 쓰는 것보다 ‘197만5498원’이라고 쓰는 편이 추가 증명서류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을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도 있다. 몇 해 전 미국의 한 신문은 폭력 범죄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다루면서 대부분의 폭력 범죄는 집 안이나 부엌 거실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밤에는 센트럴파크에서 자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실은 이렇다. 뉴욕 사람들이 센트럴파크보다 침실과 부엌에서 더 자주 살해되는 것은 침실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침실에 머물 기회가 더 많이 있어서다. 어떤 기준을 놓고 비교하는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설문 조사의 경우에는 누가 질문을 하는지, 조사대상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 흑인 병사들에게 인종차별 조사를 했을 때 백인 면접관이 질문하면 11%가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한 데 비해 흑인이 질문하면 35%가 그렇다고 했다. 영국 여성들은 일생동안 평균 2.9명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반면 남성들의 여성 파트너는 11명에 달했다. 이 경우 조사 수치보다는 ‘여자들은 내숭을 떨고 남자들은 과시하려 한다’는 경향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부실하게 만들어진 통계도 많다. 일부 통계청 공무원들이 축산정책의 기초가 되는 가축동향 조사를 하면서 닭 사육 농가를 방문하지도 않은 채 사실과 다른 지자체 자료를 입력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무연고 사망자 동향도 인구 동향 조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통계는 잘못 만들어져도, 조작돼도 문제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