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저스티스/브라이언 해리스 지음·이보경 옮김/456쪽·2만3000원·열대림
영국 정부는 1756년 4월 2일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에 있는 자국령 미노르카 섬을 보호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한다. 미노르카 섬은 식민지를 둘러싼 프랑스와의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에 비해 함대의 전력은 초라했다. 전함은 수리가 필요했고 병사도 부족했다. 지휘관 존 빙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미노르카 섬에 도착했을 때 섬의 대부분은 함락당한 상태였다. 제독이 이끄는 함대는 전투에서 큰 피해를 보고 후퇴했다. 미노르카 섬을 프랑스에 빼앗기자 영국 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제독은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빙 제독은 전투에 태만하게 임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빙 제독의 병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재판관은 모두 당시 정부 측을 대변하던 해군 대신 앤슨 제독이 선호하는 인물이었다. 빙이 제독으로서 판단착오를 일으켰을지는 몰라도 태만했다고 볼 수는 없었고, 증거도 없었다. 적국 프랑스의 리슐리외 공작이 볼테르를 통해 빙 제독을 변호하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희생양이 필요했던 영국 정부는 재판을 강행해 빙 제독에게 총살형을 선고한 뒤 처형했다. 볼테르가 재판 2년 뒤 발표한 소설 ‘캉디드’에는 빙 제독을 빗댄 주인공이 “이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가끔 제독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당한 재판을 통해 무고한 이가 희생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처벌될 만한 이가 처벌됐지만 재판 절차는 부당했던 경우도 있다.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피고들의 혐의에는 반인류 범죄라는 죄목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그들이 만행을 저지를 당시에는 없던 법이다. 형법 조항의 소급 적용이라는 법리적 모순이 발생한 셈이다. 영국 출신의 변호사인 저자는 기원전 4세기 소크라테스부터 20세기 원자폭탄 기밀을 소련에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은 미국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까지 과정이나 결과가 부당했다고 알려진 13가지 재판을 살핀다. 저자는 “법을 모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죄 있는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고 죄 없는 사람은 풀려나는 것이 공정한 재판”이라며 “이제 (법률가들이) 이런 관점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고 말한다.
‘재판’(해냄)은 세계사의 전환을 가져온 재판 50가지를 소개한다. 프랑스혁명 당시의 루이 16세 재판, 여성참정권 획득에 일정 역할을 한 수전 브라우넬 앤서니 재판을 담고 있다. ‘세기의 재판’(다연)은 영상장비 반입이 금지된 미국 재판정의 내부를 법정 스케치 화가인 마릴린 처치의 그림으로 담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범 존 힝클리 공판, 마사 스튜어트 횡령재판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재판 30가지를 엮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작가정신)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등을 통해 소크라테스 재판을 살핀다. 당대 아테네의 정치, 사회상과 민주주의의 본질, 국가의 이상에 대한 질문을 담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