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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여행? 제주 올레길 여행 ‘대박’ 난 이유

입력 | 2009-06-20 10:32:00

섬 속의 섬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제주시 우도에 '쉬멍 놀멍 걸으멍(쉬면서 놀면서 걸으면서)' 제주 속살을 느끼는 '올레코스'가 만들어졌다. 사진제공=제주올레


일본 교토에 가면 관광객들이 절대로 빼놓지 않는 여행코스가 있다. 바로 '철학자의 길'로 이름 붙은 교토 서북쪽의 은각사(銀閣寺)에서 난젠지(南禪寺)에 이르는 2Km의 수로변 샛길이 그 주인공이다.

길 주변을 장식한 꽃나무들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일본 민가와 전통상점 그리고 찻집이 올망졸망 어우러져 일본의 정취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길가의 상점에서 자연스럽게 지갑을 여는 관광객들 덕분에 지역경제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철학자의 길'이 너무 짧아 아쉽다면 장거리 도보여행길로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800km 가량을 걷는 산티아고 길도 있다. 매년 수십만에 달하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걷기 위해 스페인으로 모여들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에서도 도보여행길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주도 '올레길'은 '체험'과 '생태'로 모아지는 최근의 여행 흐름을 잘 보여주는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 길은 이미 국내에서 여행 좀 다닌다 하는 이라면 빠뜨릴 수 없는 여행 명소로 떠올랐다.

● 제주도 최고의 히트상품

2007년 만들어져 지난해에야 본격적으로 홍보가 시작된 제주 올레길이 히트 여행상품으로 등극한 사실은 어찌 보면 의아스럽기조차 하다. 215km(12코스)에 이르는 바람 거센 오솔길은 귀에 익은 관광명소나 화려한 숙박 타운과 연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측은 올레길을 찾는 여행자가 지난해에만 3만 명 올해는 그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비례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도 급증했다. 갑작스러운 고환율로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수가 매월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올레길이라는 새로운 관광 코스의 개발이 한 몫을 했다는 것이 여행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미 다양한 제주도 여행 전문회사들이 각종 올레 여행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을 정도다.

숙박업소들의 즐거운 비명에서도 올레길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서귀포시 서쪽에 자리잡은 P리조트는 올레 7코스의 시작점과 6코스의 종착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리조트 관계자는 "올레길이 만들어진 뒤 비수기 투숙객이 최대 4배까지 증가했다"고 즐거워한다. 제주도 숙박업의 최대 고민이었던 비수기 공백을 올레길이 메워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블로그에서 급증한 올레길 컨텐츠와 최근 여타 지자체에서 올레길과 비슷한 컨셉의 여행 코스를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제주 올레길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대구시민 단체들은 올해 금호강변에 대구지역 최초의 올레길을 만든데 이어 지역 명소인 불로동 고분분과 측백수림 주변에 2,3호 올레 개발과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밖에도 지리산 '둘레길'과 전북 변산에 장거리 도보 여행길인 '마실길'까지 생겨 지자체간 '여행길' 경쟁이 본격화 하고 있다.

● 지자체들이 길에 투자하는 이유는?

"과거 제주도의 관광 소득의 태반이 호텔이나 항공사로만 갔잖아요. 그런데 제주 올레 여행은 소비액의 90% 이상이 여기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어요. 실제 소득유발 효과를 내니 지역 주민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죠."(제주올레 서동성 사무국장)

5월 중순 대방산 근처 제주올레 9코스를 다녀온 황인철 씨(57)는 난생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호텔이 아닌 민박집에서 묵어보았다고 했다. 민박 요금은 2만원으로 호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게다가 민박집 운영자가 자신이 '올레지기'라면서 승용차로 올레길에서 민박집까지 픽업해주는 등 호텔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친절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제주올레가 여행객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대목은 이른바 '착한 여행'이라는 컨셉트다. 최근 유행하는 '착한 소비'의 연장선인 '착한 여행'은 여행경비의 태반이 실제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제주 올레 여행은 실제 제주 생활인과 직접적인 대면접촉을 통해 여행의 만족도는 물론 제주 지역경제에도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착한 여행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실제 제주도민이 체험하는 올레길의 경제효과는 눈부실 정도다. 이른바 뭍에서 온 '올레꾼'(올레길을 순례하는 사람)에게 좋은 입소문이 나면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손님이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해변길 사이사이 '올레꾼 대환영'이라는 환영 문구를 자연스럽게 접할 정도가 됐다.

도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제주도와 서귀포시도 올레길 관리와 화장실이나 이정표 등의 인프라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레길의 핵심이 자연스러운 생태환경에 있으므로 대형 시설과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올레의 등장은 제주도 관광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까지 제주 관광은 값비싼 호텔과 렌트카 그리고 한라산 등반이 거의 전부였다. 이색적 풍광만으로는 제주도 재방문율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주 올레를 여행해 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방문을 하고 싶다고 밝힌 비율은 90%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한다. 실제 올레길을 방문해본 사람은 '올레병'이라고 해서 반드시 제주도를 다시 방문해 올레길을 완주하기를 꿈꾼다고 한다.

12코스를 걷기 위해서는 최소 12일이 필요하지만 한 번 가본 길이라도 가는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또 전체 코스가 최대 20코스까지 늘어날 예정이어서 올레길이 제주도에 가져올 유무형의 관광유발 효과는 가히 천문학적이라는 게 제주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제주도에서 한-ASEA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올레길은 집중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제주 올레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대표 도보여행 코스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수많은 제주도민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답하고 있다. 생태길 하나가 제주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전국의 지자체들이 이 소박한 오솔길을 주목하고 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