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리뷰]유니버설발레단 ‘발레 춘향’

입력 | 2009-06-22 02:56:00


숨막히는 ‘발레’ 숨죽인 ‘춘향’

춘향전 최고의 장면은 무엇일까. 많은 이는 이몽룡의 어사출두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극적 카타르시스가 분출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하지만 진짜 명장면은 옥에 갇힌 춘향이 거지꼴로 찾아온 몽룡을 만나는 대목이다. 실낱 같은 희망이 사라진 순간이지만 춘향은 절망에 몸부림치기보다 자기 운명을 의연하게 껴안는 모습을 보여준다. 춘향은 그 순간 사랑밖에 모르던 철부지 소녀에서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는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난다. 학정에 항거하는 존재로서의 자아도 확립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사랑하라는 니체의 아모르파티(amor fati)를 극명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19, 20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 25주년 기념작이자 고양아람누리 봄 페스티벌 폐막작으로 공연한 ‘발레 춘향’은 서정적 아름다움과 극적 긴장감을 함께 갖췄다. 춘향과 몽룡의 만남과 헤어짐을 한국의 사계절 풍광에 녹인 장면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2007년 초연 무대와 비교해 감정선을 풍부하게 살린 관현악 편곡과 춘향의 수난을 강화한 안무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원작의 노골적 에로티시즘을 고난도의 고공 회전과 묘기에 가까운 발레동작을 통해 우아한 로맨티시즘으로 승화한 춘향과 몽룡의 사랑의 2인무가 돋보였다. 춘향과 몽룡이 해후하는 마지막 장면의 2인무는 너무 애틋해 눈물을 흘리는 여성 관객도 있었다. 2막 몽룡의 과거시험 장면에서 서예동작을 접목한 남성군무와 변학도가 기생점고를 받을 때 각각 소고, 부채, 비단 천을 이용해 기생 춤을 선보인 여성 솔로 춤도 독창적이었다.

이 작품을 ‘심청’에 이은 대표적 창작발레로 완성해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예술적 야망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기술적으로 뛰어났다. 아쉬운 것은 춘향이 사랑스럽지만 수동적인 소녀로만 그려진 점이다. 이는 1막을 춘향이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춘향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거듭나는 장면을 생략한 데서 비롯한다. 희생적 여성상을 강조한 고전발레의 문법에 충실한 나머지 정작 춘향전의 진짜 묘미를 놓친 것은 아닌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