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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세 축소’ 고민… 재정과 민심 사이

입력 | 2009-06-22 02:56:00


정부 “86개 세감면 연장 불가”… 국회선 18건 추가 요구

경기 악화로 국세 수입이 급감하면서 재정 건전성이 위협받고 있으나 국회에선 여전히 조세 감면을 요구하는 법안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 법안은 취약계층 보호 등 당장 시급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일부는 시기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여당이 민심 수습을 위해 재정 불안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정부 “세금 감면 자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6월 임시국회에서 조세소위에 상정될 예정(20건)이거나 계류돼 있는 법안(7건) 27건 가운데 세금 감면과 관련된 법안은 18건이다.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은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에 음반을 포함해 달라는 부가세법 개정안을, 같은 당 유재중 의원은 문화재보호구역 내의 땅을 수용 당하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냈다. 또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휘발유나 경유류의 세율을 내년까지 20%로 낮추는 조특법 개정안을,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어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담은 조특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소위에 계류돼 있는 조세 법안 중에는 △설탕에 붙는 법정관세율(완제품 기준)을 40%에서 10%로 낮춰달라는 관세법 개정안(민주당 홍재형 의원) △문화재보호기금에 내는 기부금에 과세특례 혜택을 요구하는 조특법 개정안(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영유아용 두유에 부가세를 면제하는 조특법 개정안(민주당 김효석 의원) 등이 있다.

정부는 정치권의 조세 감면 요구를 인정하면서도 재정 여건이나 과세 형평성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유아용 두유에 대한 부가세 면제 방안에 대해 기획재정부 세제실 측은 “유당(乳糖) 흡수 장애로 분유를 먹지 못하는 영유아가 있기 때문에 두유도 일반 분유처럼 면세해 달라는 주장이 타당성이 있지만 이미 시중에 특수 분유가 판매되고 있는 데다 성인이 면세 두유를 사먹을 수도 있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 여당 “비과세 축소 안 돼”

최근 정부는 올해 말로 끝나는 86개 조세 감면제도를 대거 정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추가 연장하지 않고 대부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1분기(1∼3월) 국세 수입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8조 원)가량 감소하는 등 재정 불안 조짐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말도 꺼내지 말라”며 정부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지금은 예산을 잘 쓰고 있는지 관리 감독을 잘할 때이지 비과세 제도 정비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며 “서민과 취약계층 보호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의원도 “가뜩이나 ‘강부자당’이라고 공격을 받고 있는 판에 비과세나 조세 감면 제도를 축소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야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재정 악화를 집중 부각시킬 것이 예상되는 데다 서민의 세 부담을 늘리는 조치는 10월 재·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22일 국회에서 열리는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 간담회에서 조세와 재정 문제를 논의하기로 해 당정 간 치열한 논리 싸움이 예상된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