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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성원]프랑스판 복면시위 금지법

입력 | 2009-06-23 02:58:00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도 교수(사회심리학)는 평범한 여성 8명을 4명씩 나누어 한 집단은 복면을 하고, 다른 집단은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표를 달게 한 뒤 피(被)실험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복면 집단이 신원노출 집단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전기충격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면과 익명 속에 숨은 인간이 악마적 본성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이다.

▷최근 3년간 발생한 국내 폭력시위 중 복면 착용자의 출현 비율은 2006년 62건 중 36건(58%), 2007년 64건 중 38건(59%), 2008년 77건 중 55건(71%)이었다. 폭력시위와 복면 사이의 상관관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등이 지난해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가면 마스크 같은 복면도구를 착용하거나 착용하게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한 집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신분을 숨기고 휘두르는 폭력을 막아보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그런데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해 낮잠을 자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일 공공장소에서의 복면 시위를 금지하는 총리령을 발표했다. 위반하면 1500유로(약 265만 원)까지 벌금을 물리며, 1년 안에 다시 위반할 경우엔 최고 3000유로(약 540만 원)로 늘어난다. 올 4월 초 프랑스 동부 도시 스트라스부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복면을 한 과격시위대가 차량 파손과 주유소 습격 등 폭력시위를 벌인 뒤 비판여론이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 복면시위 금지는 1989년 독일에서 도입된 이후 스위스 오스트리아로 확산돼가는 추세다.

▷프랑스에서는 “집회 시위의 자유가 제한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처벌 수위를 낮춘 것이 이 정도다. 이에 대해 ‘독재적 발상’이라는 비난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복면을 쓴 시위대가 경찰을 폭행하고 걸핏하면 죽창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벌어진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경찰관을 살상하고 국가와 개인 재산을 손괴해도 무방한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