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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로저 코언]이란 하메네이 위엄을 잃다

입력 | 2009-06-23 02:58:00


20일 이란 테헤란의 코맥 병원 길에서 경찰 지휘관이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신께 맹세합니다. 저도 처자식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때리고 싶지 않아요. 제발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 옆에 있던 한 남자가 그에게 돌을 던졌다. 지휘관은 굴하지 않고 계속 호소했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동참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경찰들은 ‘혁명가(街)’로 퇴각했다. 거기에서는 대규모 군중이 바시즈 민병대,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오후 늦게 짙은 연기가 도시를 휘감았다. 오토바이가 폭발하면서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9일 예배에서 “시위가 계속되면 유혈과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20일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신성불가침이던 권위가 도전받는 듯했다. 하메네이는 위험에 처해 있다. 그는 고귀한 중재자의 옷을 벗어던지고 당파성을 드러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편에 서고 야당 지도자 미르호세인 무사비와 혁명원로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을 내쳤다. 그는 높은 대선투표율에 찬사를 보냄에 따라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수백만 명의 이란인을 비웃었다. 투표결과에 대한 공식조사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롱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아우라(기품)를 잃었다. 공정선거라는 최초의 요구는 이제 체제와의 대립으로 확대됐다.

거리가 불타고 시위 군중은 목소리를 높였다. 최루가스 연기가 거리에 자욱했다. 시위대는 밀집대형의 경찰에게 벽돌을 던졌다. 시위대에 호소하던 지휘관은 혼자가 아니었다. 민병대에 불만을 터뜨리는 경찰도 있었다. 시위 군중을 막지 않고 단지 지켜만 보는 군인들도 있었다. 군중은 “모두 함께, 모두 함께,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쳤다.

시위의 선봉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오히려 용기 없는 남성들을 격려하며 시위를 이끌었다. 대열에서 빠져나와 앉아 있던 두 남자에게 한 여성이 “일어나라”고 외치는 것을 봤다. 한 50대 여성은 최루가스에 눈물을 흘리면서 골목 안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곧 대열로 돌아와 ‘독재자에게 죽음을’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며 절규했다. 시위대에는 지팡이에 기댄 노인, 중년의 회사원, 10대 청소년 등 남녀노소가 섞여 있었다. 학생들이 주도했던 1999년과 2003년 시위와는 양상이 달랐다.

한 여성이 필자에게 “유엔은 우리를 도울 수 없는가”라고 물었다. 필자가 주저하자 그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고 말했다. 이란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오랫동안 전개해 왔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끌었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권위주의 체제 안에 다양성을 가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에는 잔인한 야만성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란의 전 세대와 모욕 받은 지성들이 떨쳐 일어난 이유다. 이 때문에 국가의 권위 자체인 하메네이의 권위가 허약해진 것 같다.

자욱한 연기를 뚫고 위를 올려다보니 호메이니의 위엄 있는 얼굴이 보였다. 포스터 속에는 ‘이슬람은 자유의 종교’라는 문구가 있었다. 밤이 되자 멀리서 총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지붕마다 ‘알라 우 악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대선 이후 매일 밤 그랬지만 20일에는 더 우렁찼던 것 같다. 같은 외침이 1979년에도 있었지만 결국 전제주의로 귀결됐다. 자유를 얻기 위해 이란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테헤란에서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