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
박찬호(36·필라델피아)는 일본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노모의 스프링캠프에는 일본 기자가 수십 명씩 따라다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제 (한국 사람들이) 당신을 잊어버린 게 아니냐.” 박찬호는 울컥했다. “한국에서도 나의 메이저리그 복귀를 간절히 바란다. 다만 나를 방해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한국과 일본의 야구 영웅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41)가 지난해 초 스프링캠프에서 나란히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일이다. 그해 박찬호는 4승 4패(평균자책 3.40)로 부활했지만 노모는 빅 리그를 밟지 못하고 7월 은퇴를 선언했다.
ML 동기이자 13년 라이벌 日노모가 세운 최다 ‘123승’
4승만 더하면 그 기록을 깬다
○ 박찬호, 불펜에서 마지막 불꽃
박찬호는 22일 볼티모어와의 인터리그 홈경기에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이틀 연속 홀드를 추가했다. 평균자책은 5점대(5.90)로 낮아졌다. 15일 구원승으로 통산 120승(93패)을 찍은 데 이어 호투를 이어가고 있는 것.
박찬호는 노모의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123승)에 3승 차로 접근했다. 노모의 기록은 올해 깨질 가능성이 높다. 박찬호의 신뢰도가 높아짐에 따라 필라델피아 찰리 매뉴얼 감독은 박빙의 승부에 그를 출전시키고 있다. 승부가 뒤집히면 언제든지 구원승을 추가할 수 있다. 박찬호는 올해 선발 7경기에서 1승(평균자책 7.29)을 따는 데 그쳤지만 불펜으로 돌아온 뒤 최근 10경기에서 2승(평균자책 3.38)을 챙겼다. 박찬호 본인은 선발투수에 미련이 있겠지만 승수를 쌓기에는 불펜에서 뛰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 20세기 경쟁 시작, 21세기 끝나다
박찬호와 노모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일 야구의 상징이었다. 일반인들에게 메이저리그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4년, 당시 한양대 2학년이던 박찬호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에서 4년 연속 다승과 탈삼진왕을 거머쥔 노모는 이듬해 다저스에 왔고 첫해 13승(6패)을 거둬 단번에 에이스로 떠올랐다.
박찬호는 1997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거두며 노모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황색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박찬호는 2000년대를 넘기며 하향세를 걸었고, 노모도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다 은퇴했다.
박찬호는 1996년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둘 당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노모와 나를 비교할 수는 없다. 둘이 은퇴할 시점에서 다시 물어 달라.” 그리고 13년이 흘렀다. 한 명은 남고 다른 한 명은 떠났다. 그 답은 박찬호가 노모의 기록을 깨는 날 정해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