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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존엄사 적용, 더 엄격해야 한다

입력 | 2009-06-25 02:56:00


대법원의 존엄사 판결에 따라 세브란스병원이 그제 김옥경 할머니에게 부착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하지만 곧 운명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측과는 달리 김 할머니는 스스로 호흡하며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상태에서 김 할머니의 생존은 생명의 오묘함을 다시 일깨워 주면서 존엄사 시행에 좀 더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대법원이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의 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허용한 이후 세브란스병원은 3단계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서울대병원은 말기 암환자로부터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받겠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두 병원의 기준은 서로 다르고 어느 쪽이 더 적절한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대한 판단기준이 애매하고 환자가 처한 상황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일괄 적용할 경우 자칫 생명을 경시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1975년 미국에서 식물인간이었던 캐런 퀸란이 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지만 무려 9년이나 생존했던 사례도 있다. 생명이란 이처럼 강인하고 신비한 만큼 존엄사 적용에서 아무리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도 부족함이 없다. 현재 국회에서 존엄사에 관한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등 3개 의료단체는 연명치료 중지 관련 지침 제정을 위한 특별팀을 꾸려 9월까지는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의료계와 법조계, 그리고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엄격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국민과 의료진의 혼란을 없애야 할 것이다.

김 할머니 사례가 말해주듯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의료진도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존엄사가 오남용될 경우 안락사나 합법적 살인으로 악용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은 존엄사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만 정했다.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입법주체와 의료전문가의 몫이다.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에 관계없이 모든 생명은 하나뿐이며 존엄하다. 의료현장에서 생명 경시현상이 퍼지지 않도록 존엄사 적용을 엄격히 하는 법과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