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정무직을 제외한 부처의 실무간부 인사를 장관에게 맡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그리고 앞서 밝힌 내용이 제대로 실현될지 국민적 관심이 높다. 장관에게 인사권을 일부 넘기는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부처 장관에게 인사에 대한 권한을 일부 위임한다는 말은 대통령의 인사 부담을 일부 줄이면서, 장관에게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해 국정운영 책무성을 제고하고 장관의 조직 장악력을 독려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 인사참모 기능 강화를
그렇다면 왜 지금에 와서 이런 조치를 내놓았을까? 여러 가지 예상을 해볼 수 있지만, 바람직한 답은 지금까지 대통령 인사권 행사의 범위가 넓었으므로 앞으로는 대통령 권한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좀더 전문화된 인사를 해서 인사실패를 근절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어야 한다. 이번 조치가 과연 이런 의도에서 나왔는지는 불분명하다. 근본적인 인식 변화 없이 일부 직위의 인사권한을 장관에게 넘긴다고 인사문제가 일신된다고 보기 어렵다.
차제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의 인사보좌조직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의 대통령 인사보좌조직은 전임 정부보다 약화됐는데 이로 인한 문제점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의 인사참모 기능이 약하면 외풍이 불기 쉽다. 외국의 대기업을 보면 회장 보좌인력 중에 인사담당 부회장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백악관도 오래전부터 대통령인사보좌관 체제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의 우리 대통령비서관 체제로 전략적 차원의 인사가 가능한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부처의 실장급(과거의 1급)은 정무직은 아니지만, 준정무직이라 할 만큼 경력직 공무원 체계의 정점에 있다. 장관에게 이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넘기면 정치적 충성도보다는 장관 재량으로 개인별 능력을 우선시하여 인재를 발탁할 수 있으므로 장관의 조직 장악력이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국민은 이러한 조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부처 산하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넘기는 경우에 자칫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장 인사는 청와대도 정답을 내놓기가 어려운데 부처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언제나 어항처럼 여론의 각별한 주목을 받게 마련이지만 만약 이런 인사가 부처 차원에서 이뤄지면 여론 주목이 분산되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투명성-책임성 높일 제도 마련
그리고 장관 인사권을 강화한다는 말을 장관 개인의 결정권한을 임의로 강화하는 뜻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장관 개인이 임의대로 결정하면 안 되고, 반드시 부처 인사조직을 통하거나 적절한 추천기구를 통해서 제도적으로 적임자를 추천받고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부처별로 장관의 인사권을 제대로 보좌할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부분이 현재 약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인사원칙이 흐려지거나 정실주의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부구조에서 인사 흐름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었고, 권한 위임을 권력 누수로 변질시키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이를 예방하는 방안을 동시에 점검해야 한다. 인사가 중요하다고 인식하면 그에 상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운영의 합리성을 제고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사가 만사라는 말만 되풀이하지 않았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김판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