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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김기현]‘주민 반대’ 이유로 인허가 안 내주는 지자체

입력 | 2009-06-25 02:56:00


A 씨는 2006년 7월 울산 울주군 내의 한 과수원 터(4508m²)에 장례식장이 딸린 지하 2층, 지상 4층의 병원을 짓기 위해 울주군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병원 설립이 농지법에 따른 농지 전용(轉用) 허가 요건에 맞아 법적인 문제가 없어 계획대로 병원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두 달 후 ‘불가’ 통보가 나왔다. 일부 주민이 병원이 들어설 자리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다며 병원 설립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병원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교통량이 많아져 교통사고가 늘어날 것 같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이에 A 씨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적법한 건축을 불허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군청은 행정심판위원회의 이런 결정에도 불구하고 “보완할 것이 18가지나 있다”며 서류를 되돌려 주고, 법적 근거도 없는 ‘주민동의서’를 받아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1년 후인 2007년에야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당초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이 병원은 아직 착공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감사원은 24일 이처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반대’ 등의 이유로 합법적인 인허가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사례들을 적발해 공개했다. 사례 중에는 선출직인 자치단체장들이 ‘표’를 의식해 일부 주민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경우가 특히 많았다. 부산 기장군의 지방산업단지에 입주해 레미콘 공장을 세우려던 한 회사는 “먼지가 많이 난다”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역시 행정심판을 거쳐서야 겨우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법적 근거가 없는 부담을 기업에 지우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고양시는 도시 개발 사업을 허가해주면서 13억 원짜리 시정 홍보용 전광판 15대를 설치해 기부를 하라고 업체들에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고양시는 이 요구를 철회했지만 이런 요구를 받은 업체들은 한참 동안 전전긍긍해야 했다.

최근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민간 부문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부 규제의 효력을 2년 동안 정지시키는 ‘한시적 규제 유예’ 방안까지 만들어 다음 달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소극적이고 무사안일한 행정이 국민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기업 활동의 의욕을 꺾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으려는 공무원과 일선 행정기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정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민간과 기업이 의욕적으로 움직이려 할 리가 만무하다.

김기현 정치부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