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원정대 에베레스트 신루트 개척 보고회
“내년 봄엔 마칼루 서벽 제2 코리안 루트 도전”
덥수룩했던 수염은 말끔해졌다. 연탄처럼 까맣게 탔던 얼굴은 제법 뽀얗게 제 색깔을 찾았다. 5∼10kg씩 빠졌던 체중도 원래대로 돌아와 한층 건강한 모습이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신(新)루트를 개척한 박영석 원정대가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원정 보고회를 열었다. 지난달 20일 정상에 선 뒤 한 달이 넘어 ‘늦깎이’ 귀국 보고를 한 셈이다.
히말라야에서 보낸 두 달여의 원정 생활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밤이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과 싸웠고 물이 귀해 샤워도 못했다. 캠프 2를 넘게 올라가면 변변한 식사조차 못해 비스킷과 죽으로 허기를 달랬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은은한 연회장 조명 아래 테이블에는 양식 코스요리가 펼쳐졌다. 고생이 쓴 만큼 열매는 달콤했다.
박영석 대장(46·골드윈코리아 이사)은 4전 5기 만에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올랐다. 2007년에는 10년 넘게 함께한 동료이자 후배인 오희준, 이현조 대원을 잃었다.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서자 박 대장은 그들이 먼저 떠오르는 듯했다. “이제야 후배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 같다. 먼저 간 후배들이 도와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의 눈시울은 금세 뜨거워졌다.
한국산악회 최홍건 회장은 축사에서 “1977년 고(故) 고상돈 대원이 에베레스트 초등에 성공한 이후 한국 산악사에 가장 기념비적인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원정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LIG 구자준 회장,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 LIG넥스원 구자원 회장,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 등 4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선배 산악인 엄홍길 씨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공단 마라톤 감독도 자리를 빛냈다.
박 대장을 비롯해 진재창 부대장, 신동민 강기석 이형모 대원이 연단에 오르자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박 대장은 “많은 분들이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고맙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도전을 계속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보고회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내년 봄 마칼루 서벽에 도전해 두 번째 코리안 신루트 개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