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커 피플] 김주희 “사내들과 축구하던 현장서 스카우트”

입력 | 2009-06-25 08:54:00


‘얼짱스타’ 현대제철

‘얼짱 축구스타’ 김주희(24·현대제철)와 인터뷰하기 전날 공교롭게도 현대제철은 부산상무에 0-1로 패하며 시즌 첫 실점, 첫 패배를 당했다. 방송중계 화면에는 끈질긴 상대 수비에 시달리는 김주희의 모습이 몇 차례 클로즈업됐다. “10년 축구하면서 그렇게 짜증 내본 건 처음이에요.” 경기 다음날인 23일 마주앉은 김주희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생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전담 마크했던 후배 이예은(21·부산상무)에게 “(짜증을 내서) 미안하다는 전화라도 해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현재 WK리그 득점 1위(5골). 한국여자축구 ‘기대주’에서 이제는 ‘기둥’이 된 김주희와의 유쾌한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22명 중 유일한 여자아이

김주희도 자기 또래나 윗세대가 그렇듯 축구를 시작하게 된 독특한 사연을 갖고 있다. 초·중 시절 그녀는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공차는 걸 즐겼다. “편을 가를 때 가장 먼저 지목됐다”는 게 본인의 주장. 상상해 보라. 20여명 되는 남자아이들이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자기편으로 데려가겠다고 우기는 모습을. 여자 축구부가 있던 인근 창덕여중 감독이 김주희가 축구하는 걸 본 뒤 곧바로 “아버지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고 하니 ‘실력파’였다는 게 거짓은 아닌 모양. 원래 부모님은 김주희에게 운동은 안 된다고 적극 반대하셨지만 창덕여중 감독을 만난 뒤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주희야, 네가 원하면 축구해도 좋아.” 아버지가 어떻게 설득됐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

○아버지의 눈물

김주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훈련 무단 불참이나 가출의 경험이 없다. 딱 한 번. 실행 직전까지 간적은 있다. 창덕여중 전학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운동부 특유의 위계질서와 분위기에 적응이 안 돼 새벽에 울면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걸음에 달려오신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딸과 함께 울었다. “아빠 우는 모습을 그 때 처음 봤어요. 왜 내가 그만두려고 하는 지 곰곰이 생각했죠. 공차는 게 이렇게 즐거운데. 이 정도 힘든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양여대 입학 뒤 체중이 5-6kg 빠질 정도로 한 때 ‘슬럼프’도 겪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울었던 때를 생각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첫 태극마크

“매일 기도했어요. 꼭 대표팀에 선발되고 싶다고요.”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고교 3학년이던 2003년, 한국여자축구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일군 안종관 당시 대표팀 감독이 김주희를 발탁했다. “기쁘기보단 그냥 멍 했어요.” 현대제철 사령탑으로 지금도 김주희를 지도하고 있는 안 감독은 월드컵 조별리그 노르웨이와의 최종전에서 김주희를 선발로 낙점, 세계축구의 흐름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결과는 1-7 대패였지만 자신보다 한 뼘이나 더 큰 선수들과 부딪쳐 본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축구하는 게 그냥 즐거워

앞으로 현대제철 경기가 있는 날이면 김주희가 어떤 골 세리머니를 하는지 눈여겨보시라. 김주희는 매번 세리머니를 생각하고 그라운드에 들어선다. “예전 단일대회 때는 그 시기에 유행하던 것만 알면 됐는데 지금은 매 주 준비하려니 좀 벅차다”며 배시시 웃는 그녀. 요즘에는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 선생’과 가수 ‘2PM’의 새 춤을 연구 중이다. 평소에도 TV 앞에서 춤을 따라하며 까불대는 그녀에게 주변에서는 “나잇값 좀 하라“고 채근이지만 천성이 그런 걸 어찌하랴. 앞으로 목표를 묻자 그녀는 “그저 축구를 오래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왜요?”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요.” ‘지지자(知之者)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 호지자(好之者) 불여낙지자(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김주희는 누구?

-생년월일: 1985년 3월 10일 -신장: 166cm -몸무게: 54kg -포지션: 공격수

-출신교: 인수초-인수중-창덕여중-동산정보산업고-한양여대

-주요 국제대회 경력: 2003 미국월드컵. 2004 U-19 여자청소년월드컵. 2006 피스퀸컵 국제여자대회. 2007 동아시아대회 예선. 2007 올림픽 아시아예선

-A매치 데뷔 : 2003.7.22 일본전. -A매치 첫 득점: 2006.7.20 아시안컵 태국전

-A매치 통산: 24경기 출전 11골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